일러스트=손민균

저축은행업계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구조조정에 소극적으로 나서며 ‘버티기 모드’에 들어갔다. 기준금리 인하로 건설업이 살아날 것을 기대해 저가로 PF 사업장 매각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PF 사업장 정리가 더딘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경·공매를 독려할 계획이지만, 실적 개선이 시급한 저축은행업계가 이를 따를지 미지수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업권의 PF 사업장 중 경·공매 대상은 2조1000억원 규모지만, 매각이 완료된 사업장은 1800억원에 그쳤다. 매각 비율은 8%대에 불과하다.

새마을금고는 정리 대상 PF 사업장 2조7000억원 중 7000억원(26%)가량을 매각했다. 증권업계도 전체 부실 사업장의 13.5%를 정리했다. 저축은행업권이 금융권 중 PF 사업장 정리 속도가 가장 느린 것이다.

금융권에선 저축은행업계가 높은 입찰가를 책정해 의도적으로 경·공매를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 등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대출 원금 대비 120~130% 수준의 입찰가를 책정한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저축은행업계는 기준금리가 추가 인하될 경우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높은 가격에 PF 사업장을 매각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PF 부실에 대비해 대출 원금의 30% 수준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아놓은 상태다. 만약 PF 사업장을 대출 원금의 100%에 매각한다면 충당금으로 쌓은 30%는 환입돼 수익으로 계산된다. 입찰가를 낮추라는 금융 당국 압박에도 저축은행업계가 PF 사업장 매각에 소극적인 것도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서울의 한 저축은행 영업점. /송기영 기자

이에 금융감독원은 다음 달 1일 부동산 PF 정리 미완료 사업장이 많은 저축은행 대표이사(CEO)를 불러 면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면담 대상 저축은행에는 웰컴저축은행, 한국투자저축은행, OK저축은행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이 자리에서 매수자가 나올 수 있는 수준으로 입찰가를 낮추라고 지도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은 대출 원금 대비 70% 수준까지 입찰가를 내려야 매각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연말까지 매각 작업이 계속 더디게 진행될 경우 해당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저축은행업계는 이미 여러 차례 금융 당국으로부터 PF 사업장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권고를 받은 상황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 7월 금융권에 6개월 이내 PF 사업장 정리를 완료하라고 주문했다. 유찰이 됐을 경우 1개월 이내에 경·공매를 다시 진행하고 입찰가도 직전 공매가보다 낮춰 책정하라고 했다. 그러자 저축은행업계는 초기 입찰가를 높게 잡는 식으로 금융 당국의 권고를 회피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압박 수위가 더욱 강해지면 금융 PF 사업장 매각에 나서겠지만, 수익성 개선이 급선무인 저축은행업계가 어떻게 나올지 미지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