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로 국내 은행권이 코코본드(상각형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 상환) 행사 방침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CS의 코코본드 전액 상각(가치를 0으로 만드는 것) 사태로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확산한 데 따른 선제적 조치로 풀이된다.
코코본드는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30년 이상으로 길어 주식과 채권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형 채권이다. 영구채적인 성격이 강해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는데, 이 때문에 금융사들이 자본확충 수단으로 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만기가 되면 갚아야 하는 부채의 성격을 띠고 있다. 통상적으로 5년마다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데 보통 이때 상환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최근 국내 은행권이 앞다퉈 미리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방침을 밝히고 있다. 우리은행은 오는 25일 만기가 도래하는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다. 신한금융그룹도 이달 콜옵션 만기인 1350억원의 원화신종사본증권의 콜옵션 행사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KB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도 콜옵션 만기가 돌아오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을 예정대로 행사할 계획이다.
국내 은행이 이런 이례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배경엔 최근 불안한 글로벌 금융 환경이 있다. 앞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CS가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당국은 170억달러(약 22조원) 규모의 코코본드를 전액 상각 처리하게 했다. 즉 CS의 코코본드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보다 못하게 된 것이다. 코코본드는 발행사인 금융사에 위기가 발생하면, 보통주로 전환되거나 상각되며 손실을 투자자들이 떠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콜옵션 행사, 즉 투자자에게 빌린 금액을 조기에 상환해 손실이 없게 하겠다는 의사를 선제적으로 내보낸 것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콜옵션 행사 방침을 미리 발표하는 것은 CS의 신종자본증권 상각 이후 도이체방크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등 글로벌 은행 시스템 우려가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미리 조치하긴 했지만, CS와 같은 상각 사태가 실제로 벌어지긴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은행과 금융지주사가 발행하는 대부분의 코코본드는 부실금융기관 지정 요건만을 상각 조건으로 두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은행과 금융지주사의 보통주자본비율은 각 13.1%, 11.9%로 부실금융기관 평가대상 선정 기준인 2.3%를 크게 상회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각에선 코코본드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시중은행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지방은행은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면서도 "글로벌 은행 위기설에 따른 국내 금융권 여파가 생각보다 제한적이고, 금리도 상승세가 주춤하는 등 신규 발행 여건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