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초 미국 메사추세츠주(州)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지쳐 있었다. 당시 박 회장의 출국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입학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에서는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2호’의 수익률이 ‘반토막’ 나면서 투자 실패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돌연 미국으로 떠난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많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박현주 2호가 출시됐던 1999년 말 1000을 넘었던 코스피지수가 이듬해 9월에는 500 밑으로 폭락하면서 국내 대표 우량주에 분산 투자된 이 펀드의 수익률 역시 속절 없이 추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저평가 된 유망 종목을 선별해 투자해도 증시의 규모 자체가 작고 투자할 종목의 수도 한정돼 있는데 앞으로 국내 증시에서 계속 투자자들이 이탈하면 앉아서 당하는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박 회장으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우울한 마음으로 등 떠밀리듯 입학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은 박 회장과 미래에셋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미국 유학을 통해 얻은 해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박 회장은 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투자를 추진하기로 결심한다.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를 통해 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박 회장이 해외자산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면서 미래에셋이 본격적인 성장기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 국내 최초 해외 운용법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설립…‘미차솔’ 신화의 시작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유학을 마치고 복귀한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3월 박현주 회장(가운데)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호라이즌코리아코스피200 ETF’ 상장을 기념한 오프닝벨 행상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2002년말 유학을 마치고 조용히 귀국한 박 회장은 임원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해외 증시 투자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1년 여의 준비 과정을 거쳐 미래에셋은 마침내 2003년 12월 국내 자산운용사 중 최초로 해외 증시 운용법인인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이듬해인 2004년 8월에는 싱가포르에도 현지법인을 열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처음으로 출시한 해외 증시 투자펀드는 싱가포르 법인에서 운용하는 ‘미래에셋 아시아퍼시픽스타’였다. 이 펀드는 국내 최초의 해외펀드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설정 후 줄곧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며 미래에셋의 본격적인 해외증시 투자 성공을 이끈 것은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운용한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이었다.

2006년 3월 출시된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은 홍콩 현지법인이 홍콩과 중국 증시에 상장된 종목들에 투자하는 펀드로 2006년 말 47.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내 증시의 코스피지수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대부분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지 못한 사이 중국과 홍콩 증시는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역시 ‘대박’을 친 것이다.

2006년 3월 설정된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주식1호의 연도별 설정액, 수익률, 수정기준가격 추이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이 설정된 2006년 3월 1일 홍콩H지수는 6703.78에서 12월 1일에는 1만340.36으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상하이종합지수는 1298.33에서 2675.47로 두 배 이상이 됐다. 반면 코스피지수는 2006년 3월 말 1359.60에서 2006년 말 1434.46으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2007년에도 글로벌 투자자금이 신흥국, 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증시로 몰리면서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의 수익률 상승세는 계속됐다. 2007년 말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주식1호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170.2%에 달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가입이 크게 늘면서 설정액 1조8300억을 돌파하며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은 ‘메가 펀드’의 대열에 올라섰다.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과 함께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인도 증시에 투자하는 미래에셋 인디아솔로몬 펀드도 높은 수익률을 거두면서 2000년대 중반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국내 펀드 업계 1위로 올라선 것은 ‘미차솔(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의 줄임말)’과 ‘미인솔(미래에셋 인디아솔로몬의 줄임말)’의 성공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미차솔의 성공과 함께 미래에셋의 해외법인 설립도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2006년 11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도 현지에서 펀드를 조성해 판매하는 법인을 설립했다. 2007년에는 영국 현지법인을 세워 유럽 증시 투자의 포문을 열었다. 2008년에는 미국과 브라질에, 2011년에는 대만에도 각각 현지법인을 세웠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세계 12개 국가에서 11곳의 해외 현지법인, 2곳의 글로벌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워런 버핏은 포드, 나는 렉서스”…두번째 몰락 부른 박현주의 지나친 자신감

해외 증시 투자를 통해 절정에 이른 미래에셋의 성공 신화는 2007년부터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대출 사태로 글로벌 증시가 점차 불안한 모습을 보인 데다, 몇 년간 쉴 틈 없이 상승세를 지속했던 중국 증시에 대해 거품이 끼었다는 경고도 잇따라 나오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특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중국 증시에 대한 위험을 언급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는 더욱 커졌다. 버핏 회장은 2007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중국 증시가 본질적인 경제 체력(밸류에이션)에 비해 급등한 상태라고 판단해 중국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이제는 중국이 아니라 선진국 증시로 눈을 돌릴 때”라고 말했다. 버핏 회장의 발언과 함께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환매되는 자금은 빠르게 증가했고 수익률도 꺾였다.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은 2007년 한국을 방문해 중국 증시에 대한 투자 위험을 경고했다. 사진은 당시 버핏 회장이 자신의 투자대상 기업인 대구텍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당시 미래에셋은 전 세계 증시에 분산 투자해 수익은 극대화하고 위험은 회피하는 운용전략을 구사하는 ‘인사이트 펀드’를 출시했다. 미차솔, 미인솔 등 대표적인 해외 펀드를 통해 국내 펀드업계 1위로 올라선 미래에셋이 인사이트 펀드를 통해 1인자의 자리를 굳히려고 하던 순간 워런 버핏 회장이 중국 증시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찬물’을 뿌린 셈이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2007년 11월 박현주 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워런 버핏 회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박 회장은 “중국을 떠나 선진국 증시로 가라는 버핏의 주장은 구형 자동차인 포드를 보는 것 같다”며 “검증된 자산배분 전략을 기초로 신흥국 증시에 투자하는 나의 방식은 신형차인 렉서스에 해당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곧 진화될 것이고 ‘세계의 공장’으로 꼽히는 중국 역시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신흥시장 중심의 해외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워런 버핏 회장을 직접 겨냥한 박 회장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미래에셋 펀드의 몰락을 부채질한 시발점이 됐다.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중국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투자된 미래에셋의 펀드 수익률이 ‘박살’나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들어 설정액 3조원을 돌파하며 미래에셋의 해외 투자를 상징하는 펀드가 됐던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의 설정 이후 수익률은 2007년 말 170.2%에서 2008년 말에는 4.4%로 폭락했다. 수정 기준가격 역시 같은 기간 2702.01원에서 1043.62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인도와 브라질, 러시아 등 다른 신흥국 증시에 투자한 펀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4조원이 넘는 투자자금을 빨아들였던 ‘인사이트 펀드’ 역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줄곧 부진한 수익률을 내면서 미래에셋을 향한 개인투자자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게 빗발쳤다. 미래에셋 펀드의 몰락과 함께 전체 펀드 시장에서도 빠른 속도로 자금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에 의존해서는 이미 거대 금융그룹이 된 미래에셋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든 상황에 몰렸던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박현주 회장도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해외 투자의 성공과 인사이트 펀드의 출시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던 그는 결국 박현주 2호의 실패 당시와 마찬가지로 다시 ‘은둔의 시간’에 들어가야만 했다.

◆ 은둔 끝내고 돌아온 박현주, 주식에서 부동산 투자로 눈 돌려

미래에셋이 2014년 매입한 미국 워싱턴DC 소재 1801K 스트리트 빌딩. 이 건물에는 미국 FRB가 입주해 있다.

2000년 박현주 2호의 실패 이후 10년도 안 돼 또다시 맞닥뜨린 위기에서 박현주 회장이 선택한 것은 부동산 투자였다. 주식에 비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따른 변동성이 적은 데다, 금융위기 이후 가치가 높은 오피스 빌딩들의 가격도 폭락한 상황이라 향후 높은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조용한 행보를 지속했던 박 회장과 미래에셋은 2010년부터 조용히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거대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시작했다. 2010년 900억원에 브라질 상파울루의 ‘파리아리마 4400’ 빌딩을 매입했고, 2012년에는 역시 상파울루에 위치한 ‘호사베라 타워’를 5400억원에 사들였다.

2013년 이후의 부동산 투자는 주로 미국과 호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 집중됐다. 2013년 미국 시카고의 ‘225 웨스트워커빌딩’을 시작으로 호주의 포시즌호텔, 미국 워싱턴DC의 ‘2250M 스트리트빌딩’, ‘1801K 스트리트빌딩’, ‘1750K 스트리트빌딩’ 등을 잇따라 매입했다. 특히 1801K 스트리트빌딩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입주한 건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와이의 ‘페어몬트오키드호텔’과 샌프란시스코의 ‘페어몬트호텔’, 미국 6개 도시의 페덱스 물류센터 등도 미래에셋의 소유 목록에 포함됐다.

올해 들어서도 미래에셋의 부동산 투자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하와이의 ‘하얏트리젠시 와이키키’를 8800억원에 사들였고, 미국 시애틀의 아마존 본사 사옥과 베트남 하노이의 ‘랜드마크 72’ 빌딩도 미래에셋의 차지가 됐다. 올해 매입한 세 곳의 부동산 매입가격은 1조5700억원에 이른다.

미래에셋이 올해 4월 4000억원을 투자해 사들인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

해외 주식 투자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로 눈길을 돌리며 거대 부동산 그룹과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미래에셋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금융위기 이후 변동성이 더욱 커진 주식에 대한 투자를 줄인 대신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적은 부동산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리스크 관리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도 많지만, 일부에서는 수많은 주식형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을 뒤로 한 채 부동산 투자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는 것은 미래에셋의 본질적 가치나 투자철학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미래에셋이 부동산을 매입하는데 투자한 자금은 4조원이 넘는다”며 “글로벌 오피스 빌딩과 호텔 등에 대한 투자는 저금리 상황에서 안정적인 임대 수익과 함께 시세 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처럼 부동산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경우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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