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일 자 주요 일간지 광고면에 눈에 띄는 광고가 실렸다. 편지 형식을 빌린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사과글이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2011년)는 변동성이 큰 시장이었고 그래서 고객의 자산보호에 무게를 둔 전략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익을 드리지 못했다.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고해성사와 같은 심경을 광고에 띄웠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증권자투자신탁1호(인사이트 펀드)는 2011년 한 해 동안 17%의 손실이 났다. 2007년 10월 말 설정된 이후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줄곧 내리막길을 탔다. 2008년 연간 손실률은 53.33%에 달했다. ‘반 토막'이 난 펀드에 당황한 투자자들은 미래에셋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박 회장이 뒤늦게 사과글을 올렸지만 투자자들의 분노는 오히려 더 커졌다.
‘인사이트 펀드'는 미래에셋그룹의 ‘아픈 손가락'이다. 펀드 투자 붐과 몰락의 상징이기도 하다. ‘박현주’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미래에셋은 인사이트 펀드 출시 한 달 만에 4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야말로 펀드 광풍(狂風)이 불던 시기였다. 하지만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펀드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인사이트 펀드는 설정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실을 내기 시작했고, 이후 제대로 수익을 낸 적이 없다.
미래에셋은 인사이트 펀드의 운용보수 명목으로 24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수수료가 다른 해외펀드보다 비쌌고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덕이었다. 수익률이 어째 됐건 미래에셋은 인사이트 펀드로 대박을 쳤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쪽박’을 찬 셈이다.
◆ 9년째 마이너스 수익률…지우고 싶은 ‘인사이트 펀드’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보면, 인사이트 펀드는 2007년 10월 31일 설정된 이후 현재까지 누적 손실률 1.7%를 기록하고 있다.
설정 이후 처음 며칠은 플러스 수익을 거뒀지만 이후 오랜 기간 마이너스 수익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11월에는 손실률이 61.04%에 달했다. 설정 초기 인사이트 펀드에 가입한 투자자들은 출시 1년 만에 원금의 절반 이상을 잃었다. 연도별 수익률을 보면 설정 첫해인 2007년 -4.75%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2008년 -54.4%까지 수익률이 곤두박질쳤다. 이후 2009~2012년까지 매년 10~30%의 손실이 났다.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7년 만인 2014년 11월 25일 기준가격이 1003.30원으로 설정 당시 기준가격이었던 1000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7년의 긴 시간을 견뎌낸 일부 투자자들은 원금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2015년에도 인사이트 펀드는 누적수익률 13%대까지 올랐지만 올해 상반기 다시 마이너스 수익률로 돌아섰다.
인사이트 펀드의 명성은 출시 초기 몰린 자금 규모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인사이트 펀드는 설정 전부터 1조3000억원이 넘는 돈을 끌어모았고, 출시 한 달 후 설정액은 4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2007년 말 인사이트 펀드의 설정액은 4조6802억원에 달했다. 당시 설정액 4조원대 펀드는 인사이트 펀드가 유일했다. 2006년 전체 운용사에서 설정액이 1조원을 넘는 펀드는 5개에 불과했다. 규모 면에서 인사이트 펀드는 다른 펀드를 압도했다.
인사이트 펀드는 판매 초기 가입금액을 개인당 1000만원 이상으로 제한할 정도로 콧대가 높았다. 높은 인기 덕에 경쟁 증권사에서도 ‘우리도 인사이트 펀드 팝니다’는 현수막을 걸어놓을 정도였다.
‘대박’의 꿈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1년 만에 펀드가 ‘반 토막’이 나자 투자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2년의 시간을 기다린 투자자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펀드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인사이트 펀드에서는 급격히 돈이 빠져나갔다. 2011년 초 설정액 3조원이 무너졌고, 2014년 8월에는 1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현재 인사이트 펀드 설정액은 5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2014년 11월 인사이트 펀드가 원금을 회복했지만 7년 동안 원금회복을 기다린 투자자들은 출시 초기 설정액과 비교했을 때 20%도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 무엇이 문제였나…자산 배분 외면한 ‘몰빵’ 투자의 한계
“투자 대상은 글로벌마켓의 모든 자산이며 특정 벤치마크(기준수익률)에 의존하지 않는다.”
2007년 인사이트 펀드 브로셔에 담긴 내용이다. 인사이트 펀드는 국내에서 최초로 내놓은 ‘글로벌 스윙 펀드’다. 스윙 펀드는 지역과 관계없이 주식이나 채권 등의 한 가지 투자 대상에 자산 전부를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초기 중국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미래에셋의 자산운용보고서를 보면, 인사이트 펀드 설정 후 3개월이 지난 2008년 1월 말 인사이트 펀드의 중국(홍콩 포함) 투자 비중은 40.3%였고, 2009년 6월 말에는 80.4%까지 치솟았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2006년 초 1000선에서 시작해 2007년 10월 6000선을 돌파할 정도로 이상 급등한 상태였다. 2008년 초부터 거품이 꺼지면서 중국 증시는 순식간에 내리막길을 탔고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자 2008년 10월 말 상하이종합지수는 1600선까지 추락했다.
인사이트 펀드가 1년 만에 60%가 넘는 손실은 본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시장에 대한 ‘몰빵(집중)’ 투자였다. 80% 넘게 중국에 투자하다 보니 중국 시장 급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전 세계 지역과 투자 대상에 상관없이 유망 상품에 투자하겠다는 애초 계획과 달리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 펀드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예측불허의 복병을 만난 것은 운용능력 밖의 일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전 세계 다양한 주식, 채권, 부동산에 분산 투자할 수 있는 스윙 펀드의 이점을 살렸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박현주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미래에셋의 의사결정 시스템상 박 회장이 ‘다음(넥스트)은 중국’이라고 했을 때, 다른 의견을 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4조원이 넘을 정도로 펀드 덩치가 커진 이후 수익률 악화로 펀드에서 대량으로 돈이 빠져나가자 손실을 보고라도 낮은 가격에 팔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됐다”고 덧붙였다.
◆ 투자자 손실 눈덩이…미래에셋, 펀드 팔아 챙긴 돈 2400억원
‘반 토막 펀드·눈물의 펀드·忍사이트 펀드·펀드 몰락의 상징…’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인사이트 펀드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의 얘기는 끝이 없다. 하지만 미래에셋으로서는 ‘비운의 효자 상품’이다. 펀드에서 손실이 나도 미래에셋은 보수료를 꼬박꼬박 챙겼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사이트 펀드가 출시된 이듬해인 2008년 1분기 인사이트 펀드 운용으로 140억원, 2분기 150억원, 3분기 125억원 등 분기마다 120억~150억원을 벌어들였다.
금융투자협회와 예탁결제원에 의뢰해 추정해 본 지금까지의 인사이트 펀드 총 보수는 2377억원이었다. 또 미래에셋증권 등 판매사들이 거둔 인사이트 펀드 선취 판매 수수료는 400억원이 넘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사이트 펀드 하나만으로 이처럼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인사이트 펀드의 운용 보수가 여타 해외 주식형 펀드에 비해 높았기 때문이다. 인사이트 펀드의 운용 보수는 1.5%로 해외 주식형 펀드 평균(0.875%)의 2배 정도였다.
미래에셋은 인사이트 펀드로 대박을 터트렸지만, 투자자들은 펀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