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11월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현재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의 사임이 큰 화제가 됐다. 구 전 부회장은 지난 1997년 박현주 회장과 함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미래에셋을 세운 ‘창업공신’이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했던 미래에셋을 불과 10여년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로 키운 장본인이기도 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을 중심으로 증권은 최현만 사장(현재 미래에셋증권 수석 부회장)이, 운용은 구 전 부회장이 맡아 ‘좌(左) 현만, 우(右) 재상’ 체제를 구축하며 발전해 왔다.
창업 이전부터 동고동락하며 오랜 기간 운명을 함께 할 것만 같았던 대표적인 공신이었던 구 전 부회장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 것을 두고 미래에셋을 잘 아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박현주 1인 지배체제’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구 전 부회장을 비롯해 초창기 미래에셋의 발전을 이끌었던 인물들 가운데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고, 빈 자리는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올해 대우증권(미래에셋대우로 사명 변경)을 인수하며 국내 최대 규모의 금융그룹으로 발돋움 한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을 중심으로 더욱 강력한 1인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 미래에셋 창업 3인방…유방 박현주, 한신 구재상, 소하 최현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박현주 회장과 구재상 전 부회장, 최현만 수석 부회장 등 미래에셋을 창업한 세 사람을 두고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과 한신(韓信), 소하(蕭何)와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박현주 회장이 회사의 창업과 경영을 앞장서 이끌었다는 점에서 한나라의 창업주인 유방과 비슷한 캐릭터라면, 전쟁터와 같은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펀드 운용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했던 구 전 부회장은 전략가형 명장 한신을, 앞장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증권사 경영에 매진하며 회사 안살림을 도맡은 최 부회장은 명재상 소하를 닮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창업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성장을 앞장서 이끌었던 구 전 부회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작스럽게 미래에셋의 배지를 떼자, 그를 한나라 건국 이후 모든 봉록을 잃고 몰락하며 '토사구팽(兎死狗烹)'의 희생양이 된 한신으로 보는 업계 관계자들이 많았다.
구 전 부회장과 달리, 최현만 수석 부회장은 미래에셋증권 사장과 미래에셋생명 부회장 등 그룹 내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두루 거쳤고 여전히 미래에셋그룹의 ‘2인자’로 박 회장을 돕고 있다는 점에서, 한나라 건국 이후 공신들에 대한 숙청이 진행된 가운데서도 평탄하게 천수를 누린 소하와 사뭇 닮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초창기 미래에셋 주축은 호남·동원증권 인맥
박현주, 구재상, 최현만 세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대 동원증권(현재 한국투자증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회장은 동원증권 을지로 중앙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지점을 전국 1위 점포로 키웠고 이후 압구정 지점장을 거쳐 1995년에는 이사급인 강남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그가 이끌던 동원증권 강남본부에 속해 있던 압구정지점의 지점장이 구재상 전 부회장, 서초지점장이 최현만 부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강남본부장으로 일하며 눈 여겨 봤던 두 지점장과 함께 1997년 동원증권을 퇴사해 미래에셋벤처캐피탈을 창업한다.
세 사람을 묶는 키워드는 동원증권 외에 또 있다. 이들이 모두 호남 출신으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이다. 박 회장은 광주 출신으로 지역 명문인 광주일고를 졸업한 대표적인 호남 인재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전남 화순 출신인 구 전 부회장은 광주 대동고를 나왔고,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최 부회장도 광주고를 졸업했다.
세 사람 외에도 초창기 미래에셋그룹을 이끌었던 인물들은 호남 출신이 많았다. 1999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합류해 기획실장, 경영관리본부장 등을 거쳐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정상기 부회장도 전남 순천 출신으로 전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미래에셋에 합류해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과 미래에셋캐피탈 대표, 미래에셋디앤아이 대표 등을 역임하며 한 때 ‘박현주의 집사’로 불렸던 박만순씨도 광주 출신으로 광주 진흥고와 전남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이 밖에 동원증권에서 박 회장과 인연을 맺은 뒤 2000년부터 미래에셋증권 IB 사업부문을 이끌다 현재는 미래에셋그룹 계열사인 부동산114를 이끌고 있는 이구범 대표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광주 서석고를 졸업한 호남 출신이다.
2005년부터 미래에셋생명 대표로 합류한 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부회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난 윤진홍 전 부회장도 광주 출신이다. 박현주 회장은 전북 전주 출신으로 현대투신운용과 굿모닝투신운용 대표 등을 지낸 뒤 물러나 야인(野人)으로 있던 강창희씨도 부회장급인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의 직책을 맡기며 호남 출신 증권업계 선배에 대한 예우를 하기도 했다.
미래에셋그룹 경영진 중에는 고려대 출신들도 눈에 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박현주 회장은 경영대 건물 안에 그의 이름을 딴 라운지가 있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큰 것으로 유명하다. 초창기부터 그룹의 경영진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는 이구범 대표도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서유석 미래에셋자산운용 리테일마케팅부문 총괄사장, 유정헌 미래에셋자산운용 사모펀드(PEF)부문 사장, 이태용 미래에셋자산운용 글로벌경영 총괄사장, 조한홍 미래에셋생명 금융서비스부문 대표, 이만희 미래에셋증권 전무, 류승선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등이 고려대를 졸업한 임원들이다.
◆ 박현주의 끝없는 인재 욕심…‘스타 매니저’ 산실(産室) 된 미래에셋운용
초창기 미래에셋그룹의 주축이 됐던 호남과 동원증권 출신 경영진의 색채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많이 옅어졌다. 회사 설립 초기에는 박 회장과 인연을 맺었던 익숙한 인물들과 함께했지만, 기둥이 세워진 이후에는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갖춘 인재들이 영입돼 이제는 미래에셋그룹 임원진의 특징을 몇 가지 정도로 압축하는 것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박현주 회장은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도 유능하다고 판단되면 당장 영입에 나설 정도로 인재 욕심이 상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하기 전까지 그룹의 중심이 돼 왔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설립 초기부터 박 회장이 영입한 젊은 펀드매니저들에 의해 ‘히트상품’이 된 유명 펀드를 잇따라 출시하며 불과 몇 년만에 국내 자산운용업계 1위로 성장했다.
박현주 회장은 미래에셋을 설립한 후 한국투자신탁운용 펀드매니저로 일하던 김영일씨를 영입해 수석운용팀장 직책을 맡겼다. 김영일 매니저는 1990년대 말 미래에셋이 처음 출시한 뮤추얼펀드인 ‘박현주 1호’ 등을 운용하며 초창기 미래에셋을 대표하는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 팀장과 이사 등을 거친 뒤 회사를 떠나 KB자산운용과 한국투신운용 투자책임자(CIO)를 지냈다.
이 밖에 대우증권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1990년대 후반 미래에셋에 합류해 운용 본부장을 맡으며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렸던 이병익씨는 현재 오크우드투자자문 대표로 자산운용업계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장기신용은행에서 일하다 1998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합류한 손동식 매니저는 주식운용팀장과 본부장, 투자책임자(CIO), 부사장 등을 거친 뒤 2012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대표로 재직 중이다. 미래에셋에 몸 담았던 많은 스타 펀드매니저들이 박현주 회장과 운용철학 등이 맞지 않거나,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회사를 떠났지만, 손 대표는 18년간 별다른 움직임 없이 계속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2000년대로 넘어온 이후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후 여전히 운용업계 등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 선경래 지앤지인베스트 대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주식운용팀장과 이사 등을 거친 뒤 독립해 선물·옵션 전업투자로 크게 성공했다. 그는 2008년 속옷 제조업체인 좋은사람들을 인수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식운용팀장을 지냈던 김태우씨는 피델리티자산운용 전무 등을 거쳐 올해 초 KTB자산운용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미래에셋인디펜던스와 미래에셋디스커버리 등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주력 펀드들의 운용을 책임졌던 박건영씨는 2009년 브레인투자자문을 설립한 뒤 현재 브레인자산운용 대표로 일하고 있다.
◆ 박현주 1인 지배체제 강화…증권 최현만, 운용 정상기, 생명 하만덕이 보좌
회사 설립 후 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이 전체를 총괄하고 구재상 전 부회장이 운용을, 최현만 부회장이 증권의 경영을 맡는 ‘3각 편대’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여기에 투자교육연구소장을 맡았던 강창희 부회장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 대표였던 윤진홍 부회장 등이 그룹 수뇌부를 형성했다.
그룹의 지배와 경영은 박현주 회장이 중심이었지만, 회사의 설립과 본격적인 성장 과정에서 함께 힘을 보탠 4명의 부회장이 있어 적절한 견제와 조언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2년 구 전 부회장을 포함해 강창희, 윤진홍 전 부회장 등 3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으면서 이후 그룹에서 박현주 회장의 1인 지배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현재 미래에셋그룹은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과 정상기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 하만덕 미래에셋생명 부회장 등 3인 부회장 체제다. 그러나 최 부회장과 정 부회장은 박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두텁고, 스스로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박 회장의 뜻과 경영철학을 앞장서 시행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의 3인 부회장 체제는 1인자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균형보다는 ‘박현주 1인 지배체제’의 효율성을 강화하는데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분석이 많다.
이 밖에 미래에셋증권 공동 대표로 일하다 올해 미래에셋생명 법인총괄 대표로 자리를 옮긴 변재상 사장, 1999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마케팅팀장으로 합류한 후 2010년부터 미래에셋 대표를 맡고 있는 조웅기 사장 등도 박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들로 꼽힌다.
올해 대우증권을 인수한 미래에셋증권은 오는 11월 1일부터 통합 미래에셋대우로 새롭게 출범한다. 현재 두 회사는 통합 실무작업을 추진 중이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달부터 미래에셋대우 회장을 맡은 뒤 대우증권 임원들까지 불러 골프 회동을 갖는 등 ‘대우 출신 끌어안기’에 애쓰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물 밑에서 박 회장의 경영과 투자철학에 맞지 않는 인물들을 솎아 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설립 후 18년간 많은 경력직원들을 영입해 ‘인재 블랙홀’이라고 불렸지만, 미래에셋에 몸 담고 있다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업 사관학교’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색깔이 뚜렷한 대우증권 출신 임직원 중에서는 미래에셋의 투자, 경영전략이 달라 미래를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며 “통합 초기에는 대우증권 출신 직원들의 이탈이 미래에셋그룹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