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한화에어로)가 스페인 육군의 신형 자주포 도입 사업 수주전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스페인 최대 방위산업 기업 인드라와 함께 기존 K9 자주포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신형 자주포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는 현지에 생산 라인을 만드는 것을 넘어 설계까지 함께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독일 기업과 경쟁 중인 한화에어로가 사업을 수주하면 최초의 서유럽권 진출이 된다.

26일 방산업계 등에 따르면 한화에어로는 24일(현지시각)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인드라 그룹과 자주포 현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MOU는 한화에어로가 K9 자주포 플랫폼 기술을 제공하면 인드라가 스페인 북부 히혼 공장에서 차체와 제어·통신 시스템을 제작하는 게 핵심이다.

양사는 한화에어로의 플랫폼과 인드라의 기술로 개발한 '스페인형 K9 자주포'를 스페인 육군의 도입 사업에 내세운다는 계획이다.

K10 탄약운반장갑차(왼쪽)과 K9 자주포(오른쪽).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특히 이 MOU에는 단순한 기술 이전을 넘어 K9 자주포의 설계 권한을 제공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인드라의 기술이 접목된 스페인형 K9 자주포다. 스페인은 이 모델을 제3국에 수출할 권한도 갖는다.

앙헬 에스크리바노 인드라 회장은 "인드라와 한화에어로의 이번 협력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상 플랫폼에 대해 스페인군이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실질적인 주권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가 인드라와 손을 잡은 건 유럽의 방산 블록화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유럽에선 유럽연합(EU)의 무기 공동 구매 대출 프로그램을 앞세운 현지 업체들의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특히 종종 한국과 경쟁하는 독일은 EU의 무기 공동 구매 프로그램 세이프(SAFE)에 참여한 대표적인 국가다. 세이프는 1500억유로(약 255조원) 규모 군사 조달 기금으로, 공동 구매하는 회원국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스페인이 1차 세이프 프로그램의 수혜국이기도 한 만큼, 현지 기업이 전면에 나서는 셈이다.

스페인 육군은 이번 사업을 통해 궤도형·차륜형 자주포 각 128·86문, 탄약 보급 차량 214대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와 인드라가 수주할 경우 납품 물량은 한화에어로의 K9 자주포뿐만 아니라 K10 탄약 보급 차량, K11 사격 지휘통제 차량을 토대로 만들어질 전망이다.

스페인 사업에 제시할 예정으로 알려진 차륜형 장갑차 네메시스에 활용될 독일 GDLES의 ASCOD 플랫폼. /GDLES 홈페이지 캡처

이번 사업의 경쟁자는 독일의 방산 기업 GDLES와 KNDS로 꼽힌다. 이 두 기업이 공동 개발한 궤도형 자주포 네미시스가 핵심 경쟁 대상으로 알려져 있다. GDLES의 궤도형 장갑차 플랫폼 위에 KNDS의 무인 포탑을 얹은 기종이다.

이 모델은 지난해 열린 스페인 방산 전시회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승무원 2명으로도 운용할 수 있고, 기동 중 사격도 가능하다. 자동화와 무인화 개념이 포함된 차세대 궤도형 자주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은 GDLES의 차륜형 플랫폼 피라나(Piranha)에 KNDS 포탑을 얹은 차륜형 자주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종 또한 2인 운용이 가능하며 360도 전 방향 사격과 이동 중 사격 능력이 가능한 특징이 있다.

다만 독일의 궤도형·차륜형 자주포 기종은 전력화 단계에 접어든 건 아니어서 실전 운용 경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K9 자주포는 동·북 유럽권에 집중 배치돼 실전 경험을 쌓으며 성능을 인정받았고, 생산 능력 또한 검증된 기종이다.

K9 자주포는 폴란드뿐만 아니라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에 약 1000문이 배치된 상태다. 차륜형 자주포의 실전 배치 사례는 없지만, 궤도형과 차륜형 모두 생산 가능한 K9 플랫폼을 강조하고 있다.

한화에어로가 실제 스페인 사업을 수주한다면 한국 방산 업계 최초의 서유럽권 진출로 기록된다. 또 최종 조립 형태의 현지 생산을 넘어 현지 설계까지 확대한 첫 수출 모델이란 의미도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방산 수주 결과를 보면 운용 실적과 성능, 납기가 핵심"이라며 "유럽 내에 방산 블록화 기조가 분명히 있지만,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도 실리를 택한다는 점에서 (수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