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무역적자 지속 등으로 외화 수급에 비상등이 켜진 가운데 기업 투자 측면에서도 달러가 줄줄 새고 있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겠다며 올해 들어서만 66조원어치의 달러를 들고 나간 반면, 외국인들이 국내에 투자하겠다며 가져온 달러는 약 16조원에 불과했다. 노동·환경 등 각종 규제로 대표되는 '반기업 정서'를 해소해 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해야 외환시장 안정화를 비롯한 경제 회복을 앞당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외국인 국내직접투자 부진에 347억달러 외화유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국제수지 기준 비거주자. 법인 포함)의 올해 1~8월 국내직접투자는 114억7000만달러(약 16조4000억원)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21억7000만달러) 투자액보다 약 6% 줄었다. 외국인의 연간 국내직접투자는 2019~2020년 100억달러 아래를 밑돌다 지난해 168억2000만달러로 올라섰지만, 1년 만에 다시 하락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거주자(개인·법인)의 해외직접투자는 462억달러(약 66조원)로 전년 동기(312억8000만달러)보다 약 48% 늘었다. 2017년(382억2000만달러) 이후 2020년(348억3000만달러)까지 4년 연속 300억달러대를 유지했던 해외직접투자는 지난해 608억2000만달러로 급증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해외직접투자는 700만달러 안팎까지 늘어날 수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늘고,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감소하면 외화 수급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가 더욱 활발해진 상황에서 외국인의 국내 투자가 저조하면 그 차이만큼 외화 유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 규제·세금 이중고에 韓 투자 꺼리는 외국인
외국인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규제다. 특히 노동규제가 한국 투자를 고려하는 외국인의 등을 떠밀고 있다. 김재현 한국경영자총협회 규제개혁팀장은 "지난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투자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다른 나라에 비해 개선이 필요한 한국의 규제분야 1위는 노동이었다"며 "경직적인 근로 조건과 연공서열에 따른 높은 임금, 대립적인 노사관계 등이 외국인의 국내 투자를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물질관리법' 등 환경 규제와 불공정거래 관련 규제 역시 투자 걸림돌로 꼽혔다.
세제 혜택이 부족한 점도 한국의 투자 매력을 떨어트리는 요인이다. 한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9번째로 높다. 지난 2019년 외투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도 사라졌다. 그동안에는 업종, 투자금액별로 최장 7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50~100% 감면받았다. 이상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해외 국가 대비 지나치게 높은 법인세율과 부족한 세제 혜택 구조에서는 외국인이 국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 들어 외국인의 한국 투자가 더욱 저조한 이유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성장세 둔화 등이 꼽힌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실장은 "과거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로 삼기 위한 목적이 컸다"며 "중국의 성장세가 예전만큼 높지 않은 데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서 중국과의 연결고리가 사업에 방해가 되는 분위기여서 한국의 투자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 열풍이 산업계에 불고 있는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렵다는 점도 외국인의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이같은 '반기업 정서'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계 관계자는 "노동규제 완화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이를 살펴야 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김문수 신임 위원장의 색깔론에 매몰돼 논의 자체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개선된 것이 없으니 산업 현장에서 규제 완화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하는 내용 역시 야당의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에 갇혀 국회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외국인 투자, 국가 체력과 직결…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해야"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만으론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다며 기업 투자 측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외국인의 투자를 활성화하면 그만큼 달러가 들어와 외화 수급에 기여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외국인의 증권·채권 등 간접투자를 늘려 외화를 들여오되, 장기적으론 노동규제 완화 등을 통해 외국인의 직접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국내직접투자는 일자리를 늘려 경제 회복을 앞당기고, 국가 기초체력을 키워 환율 부담 역시 줄어들 수 있다. 윤영석 의원은 "외환시장도 금융시장과 마찬가지로 실물경제의 펀더멘탈이 중요하다"며 "민간소비, 투자, 경상수지 등 숫자로만 측정되는 펀더멘탈 외에 세제 및 규제 여건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과 같은 무형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