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국내 30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올 들어 250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연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악재를 만난 가운데 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으로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영향이 컸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조선, 2차전지, 방산 등의 사업을 보유한 기업들은 오히려 시총이 늘어났다.

9일 조선비즈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의뢰해 30대 그룹 시총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전체 시총은 지난해 12월 31일 1693조4513억원에서 이달 7일 1448조858억원으로 245조3655억원(14.5%) 감소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던 지난 7일 하루에만 30대 그룹 시총이 18조8555억원 줄었다. 통상 환율이 오르면 국내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의 순매도가 늘어 코스피는 하락세를 보인다.

30대 그룹 시총이 250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은 삼성전자(005930), 삼성생명(032830),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속한 삼성그룹의 영향이 컸다. 삼성그룹의 시총은 560조9533억원으로 국내 30대 그룹 중 1위이지만, 올 들어 168조8916억원(23.1%) 줄어 전체 30대 그룹 감소분의 69%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8만원을 넘어서며 '10만전자'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지금은 5만원대에 갇혀 있다.

그래픽=이은현

감소율 기준으로 보면 카카오(035720) 그룹의 시총이 작년 말 109조1323억원에서 이달 7일 54조320억원으로 50.5%(55조1003억원) 줄어 30대 그룹 중 가장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 카카오 그룹주들은 코로나19 확산 시기 '언택트 테마주'로 주목받으며 급성장했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매력이 줄었다. 여기에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유동성 장세가 종료된 점도 카카오와 같은 기술·성장주의 가치를 끌어내렸다. 같은 이유로 네이버(NAVER(035420)) 시총 역시 62조926억원에서 37조9774억원으로 38.8%(24조1152억원) 줄었다.

HDC그룹은 카카오 다음으로 시총 감소율이 높았다. 2조6401억원에서 1조5548억원으로 41.1%(1조853억원) 축소됐다. HDC현대EP(089470)(-27.2%), HDC랩스(039570)(-31.1%), HDC(012630)(-35.8%) 등의 시총도 크게 줄었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의 감소폭이 47.2%로 가장 컸다. 연초 광주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인명 사고 여파로 폭락했던 주가가 하반기 들어서도 여전히 회복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외에 SK(034730)(-30.5%), 효성(004800)(-29.9%), 미래에셋(-27.4%), 금호아시아나(27.1%), 교보생명보험(-27%), HMM(011200)(-27%), 현대백화점(069960)(-26%), 신세계(004170)(-24.7%) 등의 그룹도 시총이 두 자릿수 감소세를 보였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000660)(-31%)와 SK이노베이션(096770)(-22.6%),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54.1%), SK아이이테크놀로지(361610)(-54.5%)의 시총이 내려앉은 영향이 컸다. 롯데(-1.6%)와 포스코(-2.4%), 현대차(005380)(-5.1%) 등은 상대적으로 시총이 적게 감소했다.

그래픽=이은현

약세장에서도 오히려 시총이 늘어난 그룹도 있다. 30대 그룹 중 시총이 가장 급격하게 증가한 곳은 LG(003550)그룹이다. LG그룹의 시총은 작년 말 124조8357억원에서 지난 7일 218조9965억원으로 75.4% 증가했다. 배터리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상장 덕분이다. LG에너지솔루션 시총 증가분(114조1920억원)을 제외하면 LG그룹 전체 시총은 104조8045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6% 줄었다.

계열사 상장 없이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그룹들 중에선 현대중공업(19.8%)이 눈에 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신재생에너지와 조선 관련 계열사를 보유한 영향이 컸다. 태양광 모듈 판매 기업인 현대에너지솔루션은 주가가 올 들어 229.4% 폭등했고, 현대중공업(35%)과 현대미포조선(49.3%) 등도 시총이 크게 증가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올 3분기 흑자 전환 이후 2024년까지 실적이 대폭 개선될 전망이다.

한화(000880)그룹의 시총 역시 19조4336억원에서 22조9827억원으로 18.3% 늘었다. 태양광 사업을 보유한 한화솔루션(009830)이 49.2% 상승해 그룹 시총 증가를 견인했고, 방산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71.7%)도 강세를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인 한화디펜스는 지난 7월 폴란드 정부와 K-9 자주포 등 공급 기본 계약을 체결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한화솔루션 태양광 사업은 지난 2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수혜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 외에도 세계 1위 비철금속업체인 고려아연(010130)을 보유한 영풍(000670)(14.1%), 국제유가 상승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에쓰오일(S-Oil(010950)·13.5%), 고배당주로 꼽히는 KT(030200)(12.4%) 등이 두 자릿수 시총 증가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