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서방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제재하면서 현지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온 국내 건설기계업계가 고심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는 지난해 러시아에 굴착기·휠로더 등 건설기계장비 약 1500대를 수출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배 이상 늘어난 실적이다. 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지사를 설립해 현지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현대건설기계는 2017년 러시아와 인근 CIS(독립국가연합) 시장에서 연간 판매량 1000대를 처음으로 넘겼다. 이후 일본 고마츠·히타치와 함께 러시아 시장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시장 공략을 지속해왔다. 지난해 매출 중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5.5%에 이른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 역시 러시아 영업망을 넓히고 있었다. 지난해 러시아 북서부에 있는 미로바야 테크니카 그룹(Mirovaya Tekhnika Group)을 신규 유통업체로 계약했다.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를 비롯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CIS 건설기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러시아 시장 점유율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한 현대건설기계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러시아 등 신흥시장 공략에 속도를 낼 예정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 기업은 구매 통합, 라인업 교차 판매 등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면서 지난해 모두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한 건설기계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중국·미국·벨기에 등에 이어 4번째로 건설기계 수출이 많은 국가다. 특히 국내 건설기계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 등 신흥국 시장 공략에 집중해 왔다. 시장 전망도 밝았다. 글로벌 원자재 가격 급등이 러시아 내 건설기계 장비 수요를 촉진하면서다. 최근 심각한 전력난을 겪은 중국이 인접 국가인 러시아로부터 석탄 수입을 늘리면서 석탄 채굴에 쓰이는 건설기계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 우리나라 정부는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참해 러시아 중앙은행·주요 시중은행 7곳과 거래를 중지하고, 러시아 금융사가 국제 은행 간 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서 대금을 주고받는 것도 힘들어졌다. 건설기계는 주로 딜러사를 통해 수출하는데, 각자 이용하고 있는 은행망이 달라 수금이 불가능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여기에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비우호국가로 지정하면서 업체들은 결제가 불가능한 제품은 다른 지역으로 우선 보내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건설기계업계 관계자는 "수금이 가능한 제품은 기존처럼 선적해서 수출을 하고, 대금 지급이 어려운 경우는 해당 물량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