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한전) 발주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담합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효성중공업(298040)·HD현대일렉트릭(267260)·LS일렉트릭·일진전기(103590)의 임직원들이 혐의를 부인하며, 법원에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담합 규모와 증거인멸 우려를 이유로 보석을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류경진 부장판사)는 6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일진전기 임직원 4명에 대한 보석 심문을 진행했다. 보석은 구속 피고인에게 보증금 납부, 거주지 제한, 사건 관계자 접촉 금지 등 조건을 붙여 석방하는 제도다.
효성중공업 임원 측 변호인은 "효성이 담합에 가담할 이유가 없다"면서 "검찰에서 (공정위 조사 때와 달리) '물량 담합'이 아니라 '입찰 담합'이라고 바꿨는데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술을 번복할 생각이 추호도 없고 피고인은 주거가 명확하며 26년간 효성에서 성실하게 근무했다"며 "증거인멸을 절대 안 할 것이라고 피고인은 맹세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구속 피고인들도 불구속 재판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건 기록이 방대해 구속 기한 안에 충분한 심리가 어렵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객관적 자료를 이미 확보해 증거를 없앨 가능성이 낮다는 취지다. 주거지가 일정해 도망 우려가 없다는 주장도 냈다.
검찰은 보석을 불허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성실하게 근무하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는 등 개인적인 사정은 인정한다"면서도 "본건 담합의 중대성이 희석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동일한 변호인들을 통해 소송 대응을 해오고 있는 점을 봐도 방어권 보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며 "청구한 보석을 불허해달라"고 했다.
이 사건은 6700억원대 한전 발주 입찰에서 전력기기 업체들이 낙찰 예정자와 투찰 가격을 미리 정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효성중공업 등 업체들이 2015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한전이 발주한 GIS 입찰 145건에서 경쟁을 제한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산정한 담합 규모는 6770억원대, 부당이득은 최소 1600억원이다.
GIS는 발전소와 변전소에서 과도한 전류를 차단해 전력 설비를 보호하는 장비다. 검찰은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일진전기 등 4개사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관련 시장의 약 90%를 점유하면서 담합을 주도했고, 가장 큰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앞선 공판준비기일에서 주요 피고인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효성중공업은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일진전기도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체들은 정상적인 영업 판단과 회사별 내부 기준에 따라 투찰했을 뿐, 사전에 낙찰자나 투찰 가격을 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진전기 측은 수사 절차의 위법성도 다투고 있다. 일진전기 측 변호인은 앞서 "검찰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변호사 비밀유지권(ACP)에 해당하는 자료를 확보했다"며 일부 압수 자료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겠다는 입장을 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4년 12월 이 사건과 관련해 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일진전기 등 10개 사업자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391억원을 부과하고, 이 가운데 6개 사업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한전은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서울고법에서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과 시정명령을 다투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형사재판에서 담합의 성립 범위와 개별 피고인의 가담 정도가 어떻게 판단되는지에 따라 민사·행정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