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급등이 한국전력(015760)에 미치는 여파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에너지 구매 원가를 전력 판매 가격에 온전히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이어지면서, 올해 하반기 한국전력의 적자 전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요국 정부가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원전주 테마를 타고 급등했던 한국전력 주가에도 제동이 걸렸다. 신규 원전 건설에 따른 수혜가 가시화되기 전 당장 우려되는 실적 악화가 발목을 잡은 모습이다.

여기에 국내 전력 공급을 독점하는 공기업이자 상장사로서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한국전력의 딜레마도 깊어지고 있다.

◇유가 급등 지속되면 적자·이자 비용 증가 '악순환'

최근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한국전력에 대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를 하향 조정했다. 하나증권은 한국전력에 대한 목표주가를 기존 7만3000원에서 5만5000원으로 낮췄다. 올해 말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3월부터 아시아 LNG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에 한전의 구매 원가인 전력 도매가격(SMP)이 점진적으로 오를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이 일부 하향 안정화된다고 가정해도 향후 한국전력 실적에 대한 눈높이가 조정될 여지가 많다"라고 했다.

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뉴스1

하나증권은 1분기 평균 107원/kWh 수준이던 SMP가 3분기 180원/kWh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유가 급등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SMP 상한제' 도입이 언급되기도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전력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제시했다. 장남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가 상승이 비용 증가로 이어지면서 한국전력의 이익이 감소할 전망"이라며 "내년까지 실적 훼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전력의 실적 악화는 곧 재무 부담 확대로 이어진다. 한국전력은 총 부채는 200조원이 넘는데 이중 차입금만 130조원에 달한다. 전기를 팔아 이 부채의 이자 갚는 데만 한 해 4조원을 쓴다. 그런데 유가 급등으로 적자 전환하면 이자를 내기 위해 차입을 늘려야 한다. 적자와 금융비용 증가라는 악순환이 깊어지는 셈이다.

장남현 연구원은 "최근 한국전력 주가에는 매크로 불확실성에 따른 우려와 원전 수주 증가 기대가 혼재돼 있다"며 "매크로 불확실성에 따른 순이익 감소가 불가피해 실적 악화 우려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이후로 매수 시점을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실적 악화에도… 경영진 방어 수단 마땅치 않아

작년에 역대급 실적을 냈던 한국전력이 올해는 적자 전환할 위기에 처하자 딜레마도 커지고 있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전력은 배당 확대 요구가 컸다. 지난해 한국전력이 역대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냈고, 배당의 재원이 되는 순이익이 9조원에 육박하자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데 이란 전쟁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특히 올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한 개정 상법 시행 이후 한전의 고민은 더 커지게 됐다.

주주에 대한 충실은 결국 수익성 개선을 통한 주가 상승과 주주 환원 확대다. 에너지 가격이 오를 때 한전이 수익성 악화를 방어하기 위해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전기 요금 인상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소액 주주 수는 64만명이 넘는다.

문제는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를 방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시기, 전력 공급을 독점하는 공기업 한전이 단독으로 전기 요금 인상을 결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미국과 이란이 협상에 성공해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이달 정상화된다면 전기요금 인상 없이도 한전이 올해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NH투자증권(005940)은 올해에도 한전이 13조원 규모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하면서 "미국·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원전 투자 확대 기조가 강화되면서 한전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