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 현장 사진. /미국 국립암연구소 소셜미디어

중국 위주로 개발되고 임상시험한 항암제가 미국이 주도하던 세계 최대 암 학회 메인 무대에 처음 올랐다. 복제약과 원료 의약품 생산기지로만 여겨졌던 중국이 신약 개발 강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전세계 바이오 업계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3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 학술대회 '전체회의' 메인 발표 5건 중 1건이 중국 바이오 기업 아케소 바이오파마가 개발한 폐암 치료제 '이보네시맙'으로 선정됐다. ASCO 전체회의는 전 세계 종양학자들이 한 해 동안 나온 연구 중 임상 현장을 바꿀 가능성이 가장 큰 연구만 엄선해 발표하는 자리다. 외신들은 "중국에서 개발하고 중국 환자만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결과가 ASCO 전체회의 발표로 채택된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 바이오 산업이 세계 무대에 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전했다.

이중항체 면역항암제인 이보네시맙은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중국 환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한 결과 기존 표준 치료군보다 사망 위험이 34%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랜싯'에도 실렸다. 미국 바이오 기업 서밋 테라퓨틱스는 중국 외 지역 판권을 확보해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의학계와 정치권은 이런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선 미국이 오랫동안 주도해온 신약 개발 패권이 중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산업적 위기감이다. 중국 바이오 산업은 최근 몇 년 새 글로벌 제약업계의 핵심 공급처로 떠올랐다. 의약품 거래 분석 업체 딜포마에 따르면, 올해 체결된 주요 신약 기술 도입 계약 가운데 절반가량이 중국 기업이 개발한 후보 물질과 관련된 것으로 집계됐다. 화이자와 머크(MSD),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등 글로벌 제약사들도 중국에서 개발한 항암제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또 중국 환자만 대상으로 수행된 임상시험 결과가 미국 환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논란도 있다. 실제 일부 연구에서는 아시아 폐암 환자가 다른 인종보다 면역항암제에 더 잘 반응하고 생존 기간도 긴 것으로 보고됐다. 여기에 흡연율, 치료 방식, 비교 약물 차이 등이 영향을 줄 수 있어 중국 임상 결과를 미국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미 중국산 복제약과 원료의약품 의존도를 국가 안보 문제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첨단 신약 개발 분야까지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면서 바이오 산업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한층 격화하는 분위기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국이 우리 먹거리를 먹어치우고 있다(China is eating our lunch)"고 말했다. 케네디 장관의 참모인 크리스 클롬프는 "바로 지금 중국은 미국과 혁신과 바이오기술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미사일과 탱크가 아니라 실험실과 의약품 전쟁"이라고 했다.

다만 중국 신약을 무조건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수한 임상 데이터가 입증된다면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현재 미국과 유럽 환자를 포함한 별도 글로벌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보네시맙의 허가 심사를 진행 중이며, 오는 11월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