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범석 루닛 대표가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뉴질랜드 유방촬영술 AI인 볼파라 인수와 2024년 사업 전략에 대해 발표를 하고 있다./뉴스1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이 뉴질랜드의 의료용 AI 기업 볼파라헬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미국 시장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볼파라는 앞선 유방암 진단 AI기술을 보유하고 미국 시장에 이미 진출해 있는 기업이다. 루닛은 이번 인수로 미국 시장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한편, 이를 통해 확보한 1억 장의 서양인 유방촬영 영상 정보로 AI를 고도화시킬 계획이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14일 서울 강남구 루닛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볼파라의 지분 100%를 1억9307만달러(약 2525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루닛은 앞서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볼파라의 지분 인수를 의결했다.

루닛이 볼파라 인수에 뛰어든 것은 바이오 헬스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이 고려된 결과로 분석된다. 볼파라는 뉴질랜드 웰링턴에 본사를 둔 유방암 검진 AI 플랫폼 기업이다. 본사는 뉴질랜드에 있지만 매출의 96.5%가 미국에서 나오고, 미국 전체 유방촬영술 검진기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곳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볼파라의 지난해 미국 AI 유방촬영술 시장점유율은 42%로, 이 회사의 작년 매출은 약 210억원, 올해 매출은 282억원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회사는 지난해와 올해 모두 영업 손실을 냈다. 서 대표는 “볼파라의 올해 영업손실이 79억원 정도이지만, 내년은 30억원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30억원 영업손실은 상장폐지 과정을 통해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볼파라의 최근 5년간 연평균성장률(CACR) 63%였다.

루닛은 볼파라가 보유한 유방촬영 AI 분석 기술과 미국에서 확보한 서양인 유방암 환자 촬영 영상 데이터 1억장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루닛의 AI솔루션은 그동안 주로 동양권 여성의 데이터에 집중돼 왔다. 볼파라는 유방암 조기 진단과 검사 과정의 업무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AI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으며, 120건 이상의 특허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유럽 CE 인증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루닛은 볼파라의 데이터의 가치만 3000억~4000억원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서 대표는 “볼파라가 보유한 영상 데이터는 압도적인 수준”이라며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적 부분은 얼마 걸리지 않지만, 촬영 영상 데이터 확보를 위해 고객의 동의를 얻는다거나, 인허가와 규제를 뚫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박현성 루닛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영상 촬영에 3000~4000원의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해 단순 계산해도, 볼파라 인수로 3000억~4000억원의 비용을 아꼈다는 결과가 나온다”며 “법적 문제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가치는 더 크다”라고 덧붙였다.

볼파라는 미국 정부의 암 정복 프로젝트인 ‘캔서문샷’의 공공‧민간 협력체 ‘캔서엑스’에 루닛과 함께 창립멤버로 이름을 올렸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선정한 ‘올해의 헬스케어와 생명과학 파트너’에도 포함됐다. 볼파라의 입지나 인지도가 높은 만큼 이번 인수 과정 경쟁도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 대표는 “인수 실사는 9월 중순 시작했으며, 인수전이 상당히 경쟁적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 연간 약 2000만장 이상의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루닛은 유방암 진단 AI 솔루션 개발을 위해 이미 30만장의 데이터를 학습시켰다. 루닛은 볼파라가 확보한 방대한 데이터를 초거대 AI에 적용시켜 정확도를 높인 AI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다. 또 미래 먹거리로 추진하는 자율형 AI 구축에도 활용할 방침이다.

루닛은 미국 시장에서 볼파라 브랜드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또 미국의 볼파라 플랫폼 설치 기관을 대상으로 루닛 AI 솔루션을 공급하게 된다. 서 대표는 “미국 시장에서 볼파라의 인지도가 훨씬 높은 만큼 인수 이후 브랜드명을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루닛은 또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도 볼파라 AI 플랫폼을 유통함으로써 매출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루닛은 볼파라의 인수를 계기로 호주 주식시장에서 상장 폐지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번 인수는 호주 공정거래 당국의 승인을 받아 내년 상반기 주주총회에서 주주 75% 동의를 얻어 최종 절차를 마무리하게 된다. 이후 합병 완료까지 약 3~6개월이 더 소요된다. 인수 최종 마무리까지 1년 가량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자금을 현금과 외부 차입 및 투자 유치를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박현성 CFO는 “지난달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2000억원 규모의 자금은 이번 인수합병과 관계없다”며 “보유 현금과 기관투자자 등 통해 조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