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에릭슨, 노키아, 삼성전자 등 글로벌 통신장비 회사들이 미국 농촌 지역과 남미·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면서 5G(5세대 이동통신) 영토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전 세계 주요국 대도시들은 이미 5G 망 구축 작업이 마무리된 만큼 새로운 시장 수요 발굴에 전력투구하는 모양새다.
◇ 삼성전자, US 셀룰러 통해 美 농촌 공략… 노키아·화웨이, 남미·아프리카에 장비 공급 추진
1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에릭슨은 이달부터 미국 통신사 US 셀룰러를 통해 현지 농촌 지역에 5G 라우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라우터는 장비 간 신호가 최적화된 경로로 이동하도록 돕는 장비로, 통신 품질을 개선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릭슨은 지난 2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에서 공개했던 최신 라우터 6671을 미국 농촌에 공급할 예정이다. 중대역 주파수 신호를 효율적으로 전달해 통신망의 품질을 개선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도 지난달 US 셀룰러를 통해 미국 농촌 지역에 통신장비를 공급하기 위한 별도 조직을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US 셀룰러는 미국 정부의 제재에 따라 5G 망에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를 배제하고 있는데, 이때 발생하는 대체 수요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지국 등 통신장비 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단말기까지 아우르는 5G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노키아는 지난 6월 콜롬비아 현지 통신사 클라로(Claro)에 5G 솔루션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노키아는 향후 콜롬비아 도시 400여곳에 기지국을 비롯한 통신장비를 설치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부터는 14개 도시를 대상으로 5G 망 구축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화웨이는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 통신사인 MTN에 5.5G(5.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5.5G는 5G보다 더 빠른 통신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화웨이는 남아공 전역에 모바일, 기업간거래(B2B)용 통신 솔루션을 공급할 예정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북아프리카 통신망 확대를 위해 4억3000만달러(약 5871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 주요국 5G 구축률 90% 이상… 신흥 시장서 기회 찾아
최근 미국 정부는 농촌 지역 통신망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올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농촌 지역 5G 도달 범위 확대를 위해 최대 90억달러(약 12조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농촌 지역은 주요 도시와 거리가 있어 신호를 전달하기가 어려운 만큼, 경제성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평가받았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미국의 5G 커버리지는 53% 수준인데, 내륙 농촌 지역에서는 5G를 거의 활용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최근 사물인터넷(IoT) 장비 등을 활용한 지능형 농업 도입 확산으로 통신망 확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남미·아프리카 지역 정부와 통신 사업자들도 5G 망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오픈시그널에 따르면 칠레, 과테말라, 브라질 지역의 5G 가용성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5G 가용성은 이동통신이 사용되는 장소에서 5G에 접속 가능한 시간이다. 5G 가용성이 낮다는 것은 신호의 도달 범위가 좁아 이동통신 서비스의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텔레지오그래피는 아프리카 지역 전체 모바일 서비스 가입자 중 5G 이용자가 0~4%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현재 일본, 싱가포르, 쿠웨이트, 태국 등 주요국의 5G 구축률은 9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력이 있는 주요 시장에 대한 5G 통신장비 판매량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노키아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5G 장비 수요 약세로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4억2300만유로(약 6400억원)에 그쳤다. 같은 기간 에릭슨의 매출은 598억스웨덴크로나(약 7조7740억원)로 7%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24억스웨덴크로나(약 3120억원)로 전년 대비 52% 줄었다. 삼성전자 네트워크(NW)사업부의 지난해 매출은 3조78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7% 감소했다.
송영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ICT전략연구소 미래전략연구실장은 “신흥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많지는 않겠지만, 5G 망 구축이 일부 진행되면 유의미한 수익이 나올 수 있다”며 “통신장비 시장의 호황기가 다시 올 때까지 매출 감소를 조금이나마 상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