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은현

삼성전자가 지난해 갤럭시S21 시리즈의 구성품에서 충전기를 제외한 이후 플래그십(최상위) 제품군을 비롯해 보급형 A시리즈까지 스마트폰 패키지에 충전기를 담지 않고 있다. 사실상 지난 2020년부터 ‘환경 보호’를 이유로 충전기 등의 구성품을 제외한 미국 애플의 전철을 밟는 것으로, 앞으로 전 스마트폰 제품군에서 충전기를 포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은 충전기를 기본 구성품에서 제외한 2년 동안 약 8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절감했다는 분석도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과거 삼성전자가 애플을 조롱하다 결국 따라 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일부에선 별개로 구매할 충전기 물량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갤럭시A 시리즈. /삼성전자

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A23에서 충전기를 제외한 C타입 케이블만 제공한다. 앞서 지난 17일 진행한 ‘삼성 갤럭시A 이벤트 2022′에서 공개한 갤럭시A53 5G와 갤럭시A33 5G도 충전기를 제외한 바 있다.

이번 중저가 제품군인 A시리즈에도 충전기가 제외되면서 M 시리즈까지 사실상 스마트폰 전 제품군으로 충전기 제외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내놓은 갤럭시S21 시리즈부터 충전기를 기본 구성품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폴더블(화면이 접히는)폰인 갤럭시Z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샘모바일은 이달 초 “삼성전자가 앞으로 모든 스마트폰의 구성품에서 충전기 어댑터를 제외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폰아레나 역시 “올해 출시될 갤럭시A 시리즈는 모두 충전기 없이 출시될 것이며 모든 스마트폰 구성품에서 충전기 어댑터를 제외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뒤를 따르는 모양새다. 애초 스마트폰 기본 구성품에서 충전기 제외를 시작한 것은 애플이다. 애플은 지난 2020년 아이폰12 시리즈를 출시하며 충전기와 이어폰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환경 보호’다.

그러나 시장분석업체 CSS인사이트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년 동안 스마트폰 구성품에서 충전기와 이어폰을 제외해 약 8조원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사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스마트폰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뒤늦게 애플에 이어 충전기 제외 방침을 세운 것도 이런 효과를 의식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애초 애플의 충전기 제외 방침을 조롱했다가 삼성전자가 슬그머니 동참하자 소비자들은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 삼성전자가 충전기를 구매하기 위한 스마트폰 구매자들이 줄을 이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 홈페이지를 보면 소비자들은 “충전 선만 있고 충전기는 빼놓고 충전기를 안 팔면 어떻게 하냐”, “기본 구성품에서 어댑터 뺐으면 팔기라도 해야지 안 팔 거면 올려놓지 말던가”, “구성품에서 충전기를 빼면 실사용 어떻게 하라고”, “단말기만 판매하고 충전기는 따로 구매하라는 건 이기심”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일부 충전기의 경우 물량 부족으로 판매가 제때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갤럭시 플래그십 제품군에서는 기존 USB-C포트(왼쪽) 충전선이 아닌 USB C to C 충전선(오른쪽)이 제공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USB-C포트 충전기를 이용 중이었던 이용자는 새로운 충전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 /독자 제공

특히 기존 USB-C포트가 아닌, C타입으로 일원화한 충전 선을 제공하면서 기존 USB 포트를 제공하는 충전기는 ‘무용지물’이 됐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충전 선 이용을 위해서는 결국 1만~3만원가량의 충전기를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100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에 이런 구성품이 빠진 것에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앞서 삼성전자가 갤럭시S21 시리즈에서 충전기를 제외하면서 2017년부터 USB-C포트를 채택하고 있어 사용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던 점 역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환경 보호’를 내세워놓고 오히려 충전기 구매로 새로운 이익 창출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충전기를 제외한 갤럭시S21 시리즈 사전 예약자를 대상으로 정품 충전기 1만원 할인쿠폰을 제공하기도 했다. 올해 출시된 갤럭시S22 시리즈 사전 예약자에게는 최대 12만원 쿠폰을 줬다. 럭키박스도 판매했는데, 구성품 중에 충전기가 포함됐다. 한 소비자는 “120만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팔면서 충전기를 따로 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요즘 기업이 ESG 경영을 외치는데 글로벌 기업이라는 삼성전자가 환경 보호라는 명목의 꼼수로 돈을 버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C타입 충전선이 망가진 모습. /독자 제공

충전기와 함께 제공하는 충전선의 내구성을 지적하는 글도 있었다. 한 소비자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면 최소 2년은 사용하는데 그사이에 충전기와 선이 어떻게 되는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애플이 아이폰 기본 구성품에서 충전기를 제외하자 트위터에 갤럭시는 충전기를 포함한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게시글은 2021년 갤럭시S21 시리즈에서 충전기를 제외하면서 삭제된 상태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스마트폰만 교체되고 충전기가 계속 쌓이다 보니 충전기를 어떻게 처리하냐는 이슈도 있고 제조사 입장에서는 원가절감 측면도 있다”면서도 “필요로 하는 고객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충전기가 필요 없는 경우는 가격을 빼주는 등 조화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국가별 충전기 지급을 차별하는 것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GSM아레나는 지난 3월 30일(현지시각) 갤럭시A53 5G 기본 구성품에 충전기가 포함됐다고 전했다. 그 근거로 현지 삼성전자 온라인 판매점에서 스마트폰 기본 구성품에 충전기, 케이블 등이 포함된다는 고객센터 글을 덧붙였다. 브라질 정부는 스마트폰 업체들이 충전기를 포함하지 않는 것을 ‘담합’으로 판단해 지난해 삼성전자와 애플에 각각 20억~30억원 수준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