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조달시장 경색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이 흔들리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만 50여개 기업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강등될 위기에 놓인 것으로 파악됐다.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용평가 3사(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50여개 기업을 신용등급 하향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한화솔루션(009830)과 DL케미칼의 합작사 여천NCC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변경했다. '부정적' 신용등급 전망은 현 등급을 유지하되 1~2년 내에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여천NCC는 2012년에 처음으로 'A+'등급을 부여받은 후 그동안 신용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몇년간 대규모 배당을 진행하면서 지출을 늘렸지만, 최근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신용등급 하향 압박을 받고 있다.
국제 신용등급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달 SK하이닉스(000660)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신용등급은 'BBB-'를 유지했다. S&P는 이번에 등급 전망을 하향한 배경으로 "PC와 스마트폰, 서버 관련 수요 감소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서 SK하이닉스가 내년까지 저조한 영업실적을 기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2~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034220) 역시 신용등급(현재 A+) 하향 조정 대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구매 수요 둔화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 하락세로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3분기에 연결 기준 매출 6조7713억원, 영업손실 7593억원을 보였다. 지난 2분기(4883억원 적자)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적자다.
효성화학(298000) 신용등급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변경됐다. 효성화학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폴리프로필렌(PP) 제품 수요가 대폭 줄고, 베트남 공장 투자로 지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효성화학은 올해 9월 말까지 연결기준 241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시장에선 당분간 효성화학의 실적 악화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대형 인수합병(M&A)과 부실 계열사 지원 등으로 재무부담 문제가 불거진 롯데그룹 역시 신용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는 롯데케미칼(011170)은 AA+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됐다.
실적 악화와 중단기 실적 개선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등으로 재무 안정성이 저하됐다는 점 등이 반영됐다. 이어 롯데물산과 롯데캐피탈, 롯데렌탈 등의 신용등급 전망도 줄줄이 '부정적'으로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도 있다. 지난 9일 넥센타이어(002350)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기존 'A+/부정적'에서 'A/긍정적'으로 강등됐다. 영업비용 증가, 체코공장 증설, 재무부담 확대 전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가운데 해상운송비 부담, 원재료인 천연고무 가격 상승 등으로 재무안정성이 크게 악화된 영향이다.
올해 초 광주 화정 아이파크 공사 붕괴 사고로 수주에 어려움을 겪은 HDC현대산업개발(294870)과 모회사인 HDC(012630)의 신용등급은 지난달 'A+'에서 'A'로 한단계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올해 '부정적' 신용등급 전망을 받은 기업 중 상당 수가 내년에 등급 강등을 겪을 수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국내외 경기 둔화와 급격한 금리 인상, 자금조달 시장 경색 등 악재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하면서 내년 산업 전반의 업황과 재무건전성이 올해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이스신평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매겨진 국내 기업 비중은 7.8%로 긍정적(4.8%)보다 많았다.
S&P 관계자는 "국내 100대 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꺾였고 4분기 실적은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어 내년부터 신용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