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경제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초입 단계라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경제위기 대처를 위해서는 민간과 기업, 시장 중심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규제 혁파와 제도 개혁을 통해 민간과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2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정책 세미나'에서 "미국 등 주요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고, 한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입단계"라고 평가하며 "향후 경제성장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9월 물가상승률이 8.3%로 2000년 이후 평균치(2.6%)를 상회하고 있으며, 1분기 경제성장률도 잠재성장률(2.1%) 대비 2.7%포인트(p) 낮은 –0.6%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물가상승률이 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GDP갭(실질GDP와 잠재GDP 간 괴리) 역시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직전 단계라는 것이 조 실장의 진단이다.
그는 '방대한 재정과 금융을 통해 성장을 꿈꾸지만, 호황 끝에는 항상 극심한 불황이 찾아 온다'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팽창적 재정·통화정책을 오랜 시간 지속하면서 경기부양 정책의 정상화가 지연됐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위험이 겹치면서 초인플레이션이 촉발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실장은 "스태그플레이션 극복 및 지속적 성장모멘텀 구축을 위해서는 공급부문 개혁이 필요하다"며 "과거 정부와 같이 선심성 경제정책으로 일관하다가는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맞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내년 일몰 예정인 기업활력법의 상시화 및 대상 확대를 통한 기업의 사업재편 지원과 규제개혁·노동개혁 등 반시장적 제도개혁 등을 제시했다. 또한 금리인상은 불가피하지만, 금리역전에 따른 자금유출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경기 위축 방지를 위해서는 인상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내년을 기점으로 경기불황 국면에 본격 진입할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했다. 올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7%로 1%를 하회했고, 전년동기대비 성장률도 2.9%에 그쳤다. 특히 그동안 성장을 견인해 온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기여도가 줄었다.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소비도 위축됐다.
이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에 대해 올해 2.3%, 내년 1.9%를 제시하며 한국 경제의 침체를 예상했다. 민간소비에 대해서는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실질소득 감소의 영향으로 올해 3.0%를 기록한 민간소비 증가율은 내년 2.5%로 줄어들 것"이라고 봤고, 내년 3.5%의 물가상승률, 1455원의 원·달러 환율을 전망했다.
권태신 한경연 원장은 "최근 전 세계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 처해 있다"며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시장 중심의 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규제혁파와 제도개혁을 통해 민간과 기업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끔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