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미래 성장 전략을 마련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규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기업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규제에 대한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살펴본다.[편집자주]

글로벌 물류회사 A사는 올해부터 한국 지사의 보고체계를 조정했다. 기존에는 한국 지사의 직원이 아시아 본부 각 사업 담당에게 곧바로 보고했는데, 한국 지사 책임자급이 종합 보고를 받도록 단계를 추가했다. A사 관계자는 "공식적인 목적은 업무효율 증대"라면서도 "한국 내 사법 리스크가 갈수록 커져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경영자에 대해 한국의 법과 제도는 처벌 중심이다. 처벌 항목이 많을뿐더러 다른 국가보다 처벌 규정도 강하다.

일러스트=손민균

2일 경제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법령상 기업은 물론 경영자까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은 2200개가 넘는다. 특히 노동관계법의 경우 다른 나라보다 처벌 강도가 강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한국과 G5(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의 노동관계법 의무위반에 따른 처벌 규정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징역형 중심인 반면, G5는 벌금형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한국은 근로시간 위반에 대한 벌칙으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지만, 미국은 처벌 규정이 없다. 영국과 독일은 고의·반복적으로 근로시간을 위반하는 경우에만 각각 2년과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벌칙 역시 한국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 일본, 영국, 독일은 벌금형만 있다.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의도적으로 위반했을 때만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1만달러(약 1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산업안전법에 따른 처벌 형량은 최대 14배 차이가 났다. 산업안전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한 벌칙의 경우 한국은 사업주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가장 형량이 센 영국은 2년 이하의 징역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고의·반복적인 경우에만 징역 1년 이하였고, 미국과 일본은 6개월 이하였다.

그래픽=손민균

지난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징역형의 하한선만 존재한다.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이 중대재해처벌법과 비교되지만, 영국은 사업주 처벌조항이 없고 하청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도 사안별로 판단하도록 돼 있다. 외국계 화학기업 B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국가별로 사법체계나 정부 정책이 다른 만큼 글로벌 기업들이 여기에 발맞추는 것이 맞는다"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무엇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 모호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나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 등 외국 경제단체들도 꾸준히 경영자 처벌 중심의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한국에서 CEO 자리에 앉으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들은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경영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취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지난달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 121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2.1%는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 책임자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으면 사업·투자를 축소·보류하겠다"고 답했다.

특히 사고 가능성이 큰 제조업 분야의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한국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 기피는 뚜렷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95억1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제조업 FDI는 3년 연속 줄었다. 제조업 FDI는 2018년 100억5000만달러를 정점으로 2019년 82억2000만달러 → 2020년 59억7000만달러 → 2021년 50억달러로 감소해왔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처벌규정을 국제적 수준에 맞게 개선해야 기업들이 과도한 처벌로 위축되지 않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