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이 소비와 수출입 회복세에 힘입어 유례없는 호황기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선박유 마진은 갈수록 악화돼 정유업계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황의 함량이 낮아 친환경 선박유로 꼽히는 저유황 선박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자 이를 전량 수입하던 중국까지 자국 내 생산을 대폭 늘린 탓이다. 국제유가 상승,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요 증가로 정유사 실적이 아직까진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선박유 부문의 타격으로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글로벌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플레츠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선박유 스프레드(마진)는 배럴당 마이너스(-) 8.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5일까지만 해도 -7.8달러 수준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더욱 낮아진 것이다. 선박유 스프레드는 지난 4월 -5.3달러, 5월 -8달러, 6월 -8.4달러 등 계속 하락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선박유의 경우 휘발유 등에 비하면 수요가 많지 않아 이전부터 마이너스를 보여왔다"면서도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휘발유 스프레드도 크게 떨어졌었는데, 최근 휘발유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과 달리 선박유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기준 휘발유 스프레드는 배럴당 10.3달러로, 지난 4월(8.8달러)과 비교하면 1.5달러, 일주일 전(9.9달러)과 비교하면 0.4달러 올랐다.
선박유의 가격 역시 더디게 오르고 있다. 선박유 정보제공업체 쉽앤벙커에 따르면, 고유황 선박유의 경우 지난 8일 기준 톤(t)당 42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최고치인 2019년 9월 t당 573달러보다 149달러가량 낮은 수준다. 저유황 선박유 역시 지난 12일 기준 t당 551달러로, 지난해 4월 t당 214달러보단 오르긴 했지만 1월 t당 733달러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르는 만큼 제품 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선박유는 오히려 상승폭을 하회하다보니 정유사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을 오히려 끌어내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최근 해운업 호황 분위기가 선박유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수출입 회복세와 억눌렸던 소비 욕구로 인한 온라인 쇼핑 성장 등에 힘입어 물동량(물자가 이동하는 총량)이 급증하면서 해운업 매출은 상승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이 호조를 보이면 선박 운항에 필수적인 선박유 수요 역시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재로선 이같은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선박유 수요와 수익성이 더디게 회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발 물량 공세 때문이라는 것이 정유업계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국제해사기구(IMO)는 모든 해운업 선박에 저유황 선박유를 쓰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IMO 2020' 규제를 시행했다. 중국은 이전까지 저유황 선박유를 수입에 의존했지만, IMO 2020 규제 시행으로 인해 저유황 선박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자국 생산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외항선에 선박유를 벙커링(주유)할 경우 수출로 잡혀 관세를 내야하는데, 이에 대한 혜택을 주는 식이다.
중국은 선박유 최대 수요국으로 정유사들의 주요 수출국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세금 혜택 이후 중국 정유사들이 자국 내 생산을 꾸준히 늘렸고, 그 결과 지난해 수입 비중이 30%까지 낮아졌고 최근에는 최저 10%대까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월 80만톤(t) 규모인 중국 정유사들의 저유황 선박유 생산능력은 하반기 최대 월 15만t까지 늘어날 것으로 정유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저유황 선박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관련 설비를 증설해온 국내 정유사들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7년 1조원을 투자해 하루 생산량 4만배럴 규모의 저유황유 설비를 신설한 SK에너지가 대표적이다. 당시 SK에너지는 전세계 선박 연료에 대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선제적 투자를 결정했고, 이 설비는 지난해 초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당장은 정유업계 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선박유 부문 영향으로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휘발유의 경우 견조한 북미 시장 수요와 더불어 중국과 동남아, 내수 시장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면 선박유를 비롯해 제품별로 극과 극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어 실적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추세에 비춰봤을 때 저유황 선박유의 수요는 증가할 것"이라면서도 "고유황 선박유를 쓰면서 황을 저감하는 장치를 달거나 LNG선으로 바꾸는 대안도 있어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