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분업계가 26일 정부와의 간담회를 앞두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간담회에서 밀 가격 하락에 대한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값 인하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제분사들이 밀가루값 인하가 불가능 하다고 맞서면서 라면·과자 등 상당수 가공식품 가격 인하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라면이나 빵 가격이 떨어지려면 밀가루를 공급하는 제분사들이 납품가를 낮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분사의 행보를 놓고 '감탄고토(甘呑苦吐·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밀 수입가가 오르면 곧장 판매가에 반영하던 제분업계가 밀 가격 하락기에는 제품 가격 인하를 최대한 늦추거나, 심지어 가격을 올리기도 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픽=손민균

◇ "영업익 떨어지고 실제 밀값은 아직 안 내렸다"… 제분업계 난색

26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제분업계는 정부가 가격 인하를 요구하더라도 당장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정부 주장대로 밀의 국제 선물 가격은 하락했지만, 수입 가격은 아직도 높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제분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는 대한제분(001130), 사조동아원(008040), CJ제일제당(097950) 3사의 지난 1분기 제분사업부문 영업이익률이 일제히 감소했다.

1년전과 비교하면, 사조동아원의 영업이익률이 6.6%에서 5.7%로 감소했다. 대한제분 소맥분 사업부가 5.1%에서 0.7%,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가 6.7%에서 5%로 줄었다.

제품 가격 인상과 수요 증가 등으로 매출이 늘었더라도 비용이 늘며 수익성은 하락한 것이다.

제분업계는 수익성도 문제지만, 국제 밀 가격이 하락했다는 정부 주장에도 사실상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밀 가격 하락은 국제 선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밀 선물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실제 밀 가격이 내려가 생산비에 반영될 때까지는 4~8개월의 시차가 있다는 주장이다.

한 제분업계 관계자는 "제분업체가 하반기에 밀가루 가격을 내릴 것이란 보도가 확정적으로 나오는데 여지가 있다는 취지로 한 말로, 정부의 요청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사실상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다. 기업도 이익이 남아야 돌아간다"고 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도 "(가격 책정과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내부 사정을 고려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통상 4~8개월 치 재고를 확보한 뒤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지난 1분기부터 생산하고 있는 제품의 원료 단가가 높은 것은 맞는다"고 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거래되는 밀 가격은 1톤(t)당 475.5달러를 기록한 지난해 3월 7일 이후 하락해 지난달 2일 같은 기준 218.8달러까지 떨어졌다. 밀의 수입 단가는 지난해 3월 1t 403.8달러에서 지난달 394.2달러로 내렸다.

하지만 대한제분의 이익률이 줄어든 것은 비용 관리 문제라는 분석이다. 국제 밀 가격이 올랐지만,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 기업이 감내해서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소맥분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률이 0.7%까지 하락한 것에는 퇴직금 같은 일회성 비용이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밀값 하락기에도 제품값 올리며 영업익 거둔 제분업계… "감탄고토"

제분업계의 주장이 감탄고토와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밀가루 원재료인 원맥의 수입 가격이 오르면 제품가에 바로 반영하는 반면, 가격이 떨어졌을때는 판매가를 최대한 늦추거나 되레 올리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대한제분은 2012년 이후 작년까지 연 기준 총 6번의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지난 10년간 전년 대비 수입 단가 상승이 6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수입 가격에 연동해 판매가를 조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한제분은 원맥 수입가가 오르면 곧장 판매가에 반영하고, 내리면 차차 적용하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가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곡물가가 폭등한 작년 1분기 원맥 수입가가 뛰자 대한제분은 같은 시기 소맥분 1t당 판매가를 69만원으로 19% 올렸다.

하지만 곡물생산량 증대로 국제소맥시세가 하향 안정화했던 2014년, 1분기 이미 1t당 수입가가 37만원으로 전년(1t당 43만원) 대비 떨어졌고, 2분기에는 36만원으로 3분기 다시 35만원선까지 떨어졌지만, 대한제분은 4분기 들어서야 가격을 인하했다.

특히 대한제분은 2014년 4분기 판매가 인하 전까지 되레 가격 인상을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제분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분기 판매가는 원맥 수입가 인하에도 소폭 올랐다. 2014년은 대한제분이 사상 최대인 연 530억원의 이익을 낸 해다.

CJ제일제당과 사조동아원 역시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CJ제일제당은 2014년 1분기 원맥 수입 단가가 1㎏당 377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5%나 떨어졌지만, 밀가루 판매 가격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2.8% 올렸다.

당시 CJ제일제당의 개별 기준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90% 증가한 1032억원을 기록했다.

사조동아원 역시 2014년 1분기 원맥 수입 단가가 1㎏당 382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 하락했음에도 밀가루 평균 판매가를 1.3% 올렸다. 같은 기간 사조동아원은 163.4% 증가한 3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원가 상승 압박이 크지 않음에도 물가 상승기에 편승해서 판매 가격을 올리는 것은 정부로서 지적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밀가루의 경우 생산에 미치는 비용 구조가 간단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도 면밀히 지켜보고 이야기하지 않겠냐"고 했다.

◇ 라면업계, 높은 밀가루값 이유로 가격인하 소극적...정부 "먹거리 물가안정 협조 필요"

정부는 이날 제분업계 간담회에서 국제 밀 가격 동향과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업계의 입장을 듣겠다는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올 하반기 물가 관련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이와 관련해 업계의 협조를 요청하려 한다"고 했다.

앞서 추 부총리의 '라면값' 인하 요구에 라면 업체들이 '높은 밀가루값'을 이유로 가격 인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주요 원재료인 밀가루값 인하 요구에 나서는 모양새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밀가루는 라면은 물론 다양한 식품에 사용되는 원재료"라며 "먹거리 물가안정을 위해 협조 요청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