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실적이 일시 개선되자 금융 지원에 나선 채권단이 속도 조절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여천NCC 등 석유화학 기업 4곳에 대한 금융 지원 방안 확정도 이달을 넘길 전망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은 여천NCC·롯데케미칼(011170)·한화솔루션(009830)·DL케미칼 등 4곳에 대한 현장 실사를 진행 중이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달 3일 이 회사들을 사업 재편 대상 기업으로 선정하고, 금융 지원 방안 확정을 위한 실사에 착수했다.
채권단은 당초 이달 말까지 실사를 마무리하고 금융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지원 방안에는 사업 재편을 위한 신규 자금 지원, 기존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등이 포함된다.
채권단은 석유화학 기업들의 1분기 실적 개선으로 금융 지원 방안 논의에 속도 조절을 고민하고 있다. 흑자를 내는 기업에 조(兆) 단위 지원을 하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이전 사업 재편 시나리오가 적자 장기화를 전제로 마련된 만큼 금융 지원 방안의 수정도 필요한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73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과 SKC(011790) 화학사업도 각각 341억원, 9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나프타 분해 시설(NCC)의 가동률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이는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래깅 효과(lagging 효과·원료 구매와 석유 제품 판매 간 시차로 발생하는 이익 변동)'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전에 매입한 원료를 활용해 생산한 석유 제품을 전쟁 이후 비싸게 팔면서 이익률이 상승한 것이다. 시장에선 이런 흐름이 2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 실사가 진행 중인데 중동 전쟁으로 석유화학 기업 실적이 살아난다고 하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금융 지원 방안이 당장 확정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반기부터는 역래깅 효과를 우려하는 전망이 많다. 중동 전쟁으로 유가가 급격히 오른 시점에 구매한 원재료로 제품을 생산해 하반기 가격이 안정됐을 때 판매하면 수익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기준인 두바이유는 지난 3월 23일 기준 배럴당 168.75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이달 14일 105.50달러까지 떨어졌다.
김현태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급등한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 역래깅이 본격화되면서 실적이 크게 악화될 우려가 있다. 중국 증설 및 샤힌 프로젝트 가동이 예정돼 있어 2027~2028년 시황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