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비트코인이 8000만원대로 떨어진 이후 줄곧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자금이 계속 유출되고 있는 데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또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가상자산에 친화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꺾이고 있는 점도 투자 심리가 악화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8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8040만원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2.5% 올랐지만 최근 사흘째 8000만원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던 지난 5일 7000만원선 초반까지 밀리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유세 도중 총격을 받은 후 며칠간 강세를 이어가며 9500만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달 들어 가격이 눈에 띄게 하락하며 1주일 만에 12% 넘는 하락률을 기록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미국발(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위험자산에서 투자 자금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최근 자금이 빠르게 유출되면서, 기초자산이 되는 비트코인 역시 수요 감소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영국의 금융정보 분석업체인 파사이드 인베스터에 따르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11개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지난 2일부터 4거래일 연속으로 자금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빠져나간 자금은 총 5억7200만달러(약 7870억원)에 이른다.

최근 글로벌 증시를 덮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대한 우려도 비트코인 가격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자금을 빌려 여러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연 0~0.1%에서 0.25%로 인상한 후 글로벌 시장에 투자된 엔 캐리 자금이 청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면서 주식과 원자재는 물론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의 가격도 급락했다.

미국의 투자 전문매체인 모틀리 풀은 지난 5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상자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청산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매체는 엔 캐리 트레이드는 본질적으로 레버리지 거래를 의미한다며, 앞으로 짧은 시일 안에 수십억달러 규모의 포지션이 청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달 23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첫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공개적으로 가상자산에 지지 의사를 밝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해리스 부통령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대선을 앞두고 새롭게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점도 비트코인 가격이 반등하지 못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큰 호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가상자산에 친화적인 발언을 쏟아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다시 입성할 경우 적극적으로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완화에 나설 것으로 점쳐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그가 총격을 당한 직후 지지율이 단기 급등하자, 비트코인 가격도 며칠간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해리스 부통령이 선전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행보에는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6일(현지시각) 미국 P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은 51%를 기록, 48%에 그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3%포인트 차의 우위를 보였다. 특히 이번 조사는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기 전에 실시됐기 때문에 앞으로 양측의 지지율 차이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해리스 부통령은 가상자산에 대해 지금껏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가 당선될 경우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주도하는 가상자산 규제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신규 자금 유입이 저조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