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영국에 이어 미국 경쟁당국에 의해서도 제동이 걸리면서 KDB산업은행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산은이 독과점 문제에 안이하게 생각해 무리하게 두 회사의 합병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2019년에도 산은은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는데, 3년 만인 지난 1월 EU(유럽연합) 경쟁당국이 이를 불허하면서 무산됐다.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대기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 /연합뉴스

최근 미국 법무부는 지난 8월 대한항공이 신청한 기업결합심사에 대해 기한을 연장해 추가 검토키로 했다. 법무부 산하 반독점부서는 기업 결합 심사에 대해 기본적으로 75일 내에 답을 주기로 돼 있다. 사유가 공개되진 않았다. 항공업계는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결합 승인 심사를 밀도 있게 살피기 위한 것으로 봤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미주 노선에 대한 높은 점유율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주 화물운송 중 두 회사가 차지한 비중은 74.8%(대한항공 51.0%, 아시아나항공 23.8%)에 달한다. 여객도 66.9%(대한항공 47.4%, 아시아나항공 19.5%)다. 의약품 등 전략물자 운송 능력이 있는 아시아 항공사 5곳 중 두 곳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항공동맹체 간 경쟁 구도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은 스타얼라이언스에 속한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한국과 미국 노선은 스카이팀이 지배하게 된다. 미국 경쟁 당국 입장에서 델타항공(스카이팀 소속)과 유나이티드항공(스타얼라이언스 소속)의 경쟁 구도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실제로 유나이티드 항공은 미국 정부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 14일 영국 경쟁시장국(CMA)은 대한항공 측에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독과점 해소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런던과 인천 간 여객 및 항공 노선에서 시장 지배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라는 지적에 따른 조처였다. 시정안 내용이 불충분하면 2차 심층 조사한다.

/조선비즈

현재 EU와 중국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화물운송이다. 유럽 및 독립국가연합 노선에서 화물운송 점유율은 57.8%(대한항공 39.1%, 아시아나항공 18.7%)에 달한다. 중국도 67.3%(대한항공 47.7%, 아시아나항공 19.6%)다. 중국 노선의 경우 저비용항공사(LCC) 비중이 높은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산하에 있는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이 합쳐질 경우 LCC 시장 독과점 문제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산은은 2019년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2020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각각 합쳐 조선과 항공 산업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재무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선두회사가 2~3등 회사를 인수하게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두고 EU 경쟁당국은 불허 방침을 내렸다. 결국 지난 9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화를 제외한 다른 대기업이 인수에 난색을 표하면서 2019년 당시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기업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연합뉴스

이러한 이유로 문재인 정부 시기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을 비롯한 산은 경영진이 무리하게 기업결합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과 항공 모두 합병 시 몇몇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고, 해외 경쟁당국이 이를 문제 삼을 여지를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는 ‘대형항공사(FSC) M&A 관련 이슈와 쟁점’ 보고서에서 “문제는 노선별 슬롯(운수권 ·항공사가 허가 받은 주간 취항 횟수) 점유율”이라고 지적했다. 통합항공사의 일부 노선 슬롯 점유율이 이를 크게 상회할 경우 특정 노선에서의 독과점 심화가 우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21년 11월 기자간담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 “국익을 위해 작은 것에 집착하면서 소를 죽여버리는 교각살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기업결합 승인을 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당시 그는 “미래 경쟁력을 축소할 정도로 운수권을 축소하면 어려워질 수 있으며 통합 시너지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며 부대조건 없는 허가를 내 달라고 요청했었다.

한편, 입법조사처는 당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에 대해 “일반적인 기업회생절차와 달리 기업의 충분한 자구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자금이 지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금융기관이 어쩔 수 없이 인수합병이란 수단을 취했다는 명분을 얻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공적자금 회수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의결권 있는 주식 취득 방식을 채택했고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에 ‘제3자 배정’을 통한 투자를 시도한다는 점도 문제”라고 당시 보고서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