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도는 가운데, 국내 주요 은행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 나라에 노출된 국내 금융권의 외환 익스포저(위험노출액) 비중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사태가 어떻게 비화할지 모르는 만큼 시시각각 모니터링하는 상황이다. 특히 1년 전 '미얀마 사태'로 현지 직원 인명피해를 경험한 은행들은 현지에 나가 있는 주재원들과 연락을 취하며 신변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은행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인접 유럽 국가에 진출해 있는 법인 및 사무소는 9곳으로 파악됐다. 러시아에는 우리·하나은행이 현지 법인을, KDB산업·IBK기업은행은 사무소를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직접 진출한 은행은 없으나, 바로 국경을 마주한 폴란드, 헝가리에는 산업은행이 법인을, 우리·신한은행이 사무소를 두고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폴란드 사무소 개설을 준비하고 있었고, KB국민은행과 수출입은행은 관련 국가에 진출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관련 국가에 파견을 나가 있는 우리나라 주재원 수는 그리 많지는 않다. 영업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현지 시장 조사나 연락 업무를 목적으로 한 '연락 사무소'의 형태여서 사무소마다 각각 1~2명 정도만이 현지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4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신한은행 현지인 직원이 피격된 사고를 겪었던 만큼 은행권은 안전 문제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나 군사적 대치 상황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 유럽 국가로까지 번지고 있어, 동유럽에 사무소를 둔 은행들도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제1의 피난 경로가 될 것으로 보이며, 미국 병력이 배치되는 등 '전진기지' 역할도 하고 있다. 국경을 접한 또 다른 나라 헝가리에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신규 병력이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
은행 관계자는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임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직접 나가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당장은 문제가 없을 거로 보이지만, 최악의 경우 미얀마 사태 때처럼 재택근무나 주재원 철수 등의 대비책도 염두에 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련 익스포저 파악 등 금융 동향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로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의 대(對)러시아·우크라이나 익스포저 수준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전체 해외 익스포저 중 0.4%에 불과하다. 다만 구체적인 잔액은 밝히지 않았다. 익스포저란 외화대출·외화유가증권투자·외화지급보증 등의 합계로, 신용 사건 발생 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을 일컫는다.
4대 시중은행만 따져보면 약 6037억원이 현지에 묶여 있다. 러시아에 현지 법인을 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러시아 내 익스포저가 각각 2960억원, 2664억원으로 많았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357억원과 56억원 수준이다. 이들 은행의 우크라이나 내 익스포저는 거의 없는 수준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전쟁이 나지는 않더라도, 대외적으로 보이는 양국 긴장 상황에 따라 유가나 증시, 환율 등 경제 상황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취임 후 첫 해외 출장길에 오른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7일부터 오는 24일까지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영란은행 총재, 무디스 회장 등과 만난다. 이를 통해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한편 글로벌 금융긴축,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내외 리스크 관련 기관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