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2년 반 만에 1100원 아래로 밀려났다. 수출기업들은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철강업계는 마찬가지로 수출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원자재 가격 부담 완화로 남몰래 웃고 있다. 올해 들어 원재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철강업계는 환율 하락으로 그나마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다.

18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7일 1093.3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 5월 25일 환율이 달러당 1244.2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2.1% 하락한 수치다.

포스코 직원이 제철소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자 수출기업들은 비상에 걸렸다.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기업들은 결제 통화 다변화, 환율보험 등으로 환 헤지에 나서고는 있지만 그래도 원화 강세가 장기화하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무역협회가 최근 국내 수출기업 80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출기업들이 제시한 적정환율과 손익분기점은 각각 달러당 1167원, 1133원이었다.

응답 기업의 65% 이상은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액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는데, 중소기업의 61.1%, 대기업의 8.9%는 아예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업계의 경우 환율이 10원 떨어질 경우 매출(완성차 5개사 기준)은 약 4200억원 줄어든다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의 분석도 있다.

다만 환율 하락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업계가 있다. 수출보다는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철강업계다. 고로(용광로) 업체는 철광석과 원료탄의 100%, 전기로 업체는 철스크랩(고철)의 30% 정도를 수입을 통해 조달한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 하락하면 국내 철강업체의 영업이익은 2%가량 개선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운송 기간 등을 고려하면 원재료 매입금액 절감 효과는 1~2개월 뒤에 나타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포스코의 올해 4분기(10월~12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2.5% 증가한 704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제철(004020)동국제강(460860)은 4분기에 각각 982억원, 60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어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 밖에 세아제강(306200)과 세아베스틸도 각각 111억원, 133억원의 영업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원료돔에 철광석이 쌓여있는 모습.

물론 철강 제품 수출 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매출이 감소할 우려도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에서는 생산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어 매출원가가 하락한 데다가 제품 수요 회복도 두드러져 이익률이 높아진다는 평이다.

올 한해 철강기업을 애먹게 했던 원료탄(석탄) 가격이 안정된 것도 긍정적이다. 지난 16일 기준 동호주 항구(FOB)로 수입된 석탄 현물가격은 톤(t)당 101.4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 18일 163.91달러를 기록하며 정상을 찍었던 때와 비교하면 27.88% 하락했다. 지난 9월 ‘깜짝’ 반등세를 보였지만, 10월 이후로는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다른 주요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은 상승 추세이지만, 환율이 하락하고 있는 데다 하반기 들어 철강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어 부담이 줄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이달 초 철강 유통업체에 판매하는 열연 강판 가격을 t당 3만원 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상 후 가격은 t당 75만원 내외가 될 전망으로, 두 회사는 지난 8~9월에도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을 10만원 올린 바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근 포스코의 수출 비중이 50% 이상을 기록하는 등 내수 중심이었던 과거와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철강업계 전체의 수출 비중은 30% 정도로 높지 않은 편"이라면서 "판매 이익이 일부 감소할 수 있지만 수입 가격 하락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