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는 15~16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일본의 양적완화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의 발언을 할 지 주목된다. 박 장관은 지난해 말부터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누차 전해왔다.

최근 미국은  엔화 값을 떨어뜨려 경기 부양을 도모하는 일본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신흥국이 주로 나서 선진국의 양적완화 악영향을 비판하던 과거와 달리 유럽도 비판에 가세하는 등 국제 사회의 분위기는 나쁘지는 않다.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양자 회담은 예정에 없지만 다자회담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회의 분위기에 따라 엔화를 직접 겨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재정부 "적절한 입장 표명할 것"

14일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G20 회의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 영향에 대해 적절한 수준에서 표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발언 수위가 어느 정도 될 지 모르지만 우리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현지 분위기에 맞춰 적절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도록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때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차기 G20 의장국인 러시아에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공식 의제로 삼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11월 멕시코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차관을 만나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한 부작용을 경계하고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박 장관이 이번 회의에서 엔화를 직접적으로 거론할지 주목된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집권하기 전인 12월 이전까지 만해도 양적완화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은 쪽은 주로 미국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엔화 값을 끌어내려 경기 부양을 꾀하는 '아베노믹스'를 실행에 옮기면서 일본도 빈축을 사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일본 측과의 양자 회담이 예정돼있지는 않다. 박 장장관은 다자 회담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상황에 따라 엔화를 거론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비난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며 "특히나 엔화 약세를 노골적으로 거론하며 부양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 美 아베노믹스 지지 부담이지만 …韓-유럽-남미 '엔저 공동대응' 분위기

그러나 미국이 최근 '아베노믹스'를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부담 요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지난 11일 라엘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차관이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에 대해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발언은 엔화값 추가 급락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로서는 지난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우방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G20은 정무적인 것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정학적 위험 등이 이번 장관의 의사 표현에 영향을 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G20은 국제통화 보유국의 통화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는 데 공감해왔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 사회가 엔저에 공동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이다. G20에 앞서 선진국 모임인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지난 12일 "통화정책은 어디까지나 국내 경기와 산업을 활성화시킬 목적에 의해서만 쓰여져야 함을 재확인한다"며 "환율을 움직일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신흥국이 선진국의 양적완화를 성토하던 과거와 달리 '아베노믹스'의 등장 이후 유럽이 비판에 가세한 것은 힘을 실어준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와 우리나라, 남미 등이 엔저 공동 대응 전선을 구축하는 형국이다. 고정환율제도를 택하고 있는 중국은 일본의 환율 정책을 문제삼을 명분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이 공동 대응으로 이어질 지 미지수인데다 마땅한 공동 대응책이 별로 없다는 것도 한계점이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선언에 그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결국 공동 대응에 앞서 엔저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박 장관의 강도높은 발언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김윤기 대신경제연구소 경제조사실장은 "(박장관이)지나친 엔저는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할 것으로 본다"며 "G20 회의는 각국이 자국의 입장을 강요하는 자리는 아니더라도 자국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자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