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먼이 197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의 태국 음식점에서 남긴 친필 메모. 친구 랠프 레이턴이 보관해 온 것이다. /Courtesy of Ralph Leighton / Richard P. Feynman (estate)

197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이 단골 태국 음식점 '인드라'에서 친구 랠프 레이턴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레이턴이 고민에 빠졌다. 늘 시키던 생강 닭고기를 또 주문할까, 아니면 새 메뉴에 도전할까.

파인먼이 종이를 꺼내 수식을 적기 시작했다. 레이턴은 이 메모를 파인먼이 1988년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줄곧 보관했다. 하지만 흘려 쓴 필기체와 기호들이 뒤엉켜 수십 년 동안 정확한 의미가 풀리지 않았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프린스턴대 등 공동 연구팀은 파인먼의 손글씨 메모를 약 50년 만에 해독해 그의 해법이 수학적으로 최적임을 증명했다고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1일(현지 시각) 발표했다.

파인먼이 처음 생각한 것은 한 식당 안에서 메뉴를 고르는 문제였다. 연구팀은 이를 한 도시에서 여러 식당을 고르는 문제로 재구성했다. 수학적으로는 같은 문제다. 어떤 도시를 며칠 동안 방문한다고 가정하고, 목표는 여행 기간 전체의 식사 만족도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매일 새 식당을 찾아다니면 최고 맛집을 만날 가능성은 커진다. 하지만 이미 찾은 맛집을 다시 즐길 기회는 줄어든다. 반대로 너무 일찍 한 식당에 정착하면 더 좋은 식당을 놓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수학과 심리학에서 '최적 정지 문제'로 불린다. 말 그대로 언제까지 탐색하고, 언제 멈출지 따지는 문제다.

연구팀이 밝혀낸 파인먼의 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처음엔 까다롭게, 나중엔 현실적으로'다. 여행 초반에는 아주 좋은 식당을 찾을 때까지 새 식당에 도전하는 편이 낫다. 하지만 남은 날이 줄어들수록 새 식당에 거는 기대를 낮추고, 이미 찾은 괜찮은 식당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리하다. 수학적으로는 남은 기회가 줄어들수록 '이 정도면 만족하고 멈추자'는 기준선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해법이 실제 인간의 선택과 얼마나 닮았는지도 실험했다. 미국 성인 2520명을 온라인 실험에 참여시켜 가상의 도시에서 7일, 14일, 28일 동안 식당을 고르게 했다. 참가자들은 매일 새 식당에 갈지, 지금까지 가본 식당 중 가장 좋았던 곳으로 돌아갈지 선택했다.

결과는 파인먼의 해법과 비슷한 방향이었다. 사람들은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 식당에 도전하는 기준을 일정하게 낮춰갔다. 초반에는 더 좋은 곳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새 식당을 더 찾아다녔고, 후반에는 이미 찾은 좋은 식당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도 인간의 직관이 꽤 효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파인먼의 해법은 식당 선택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을 구할 때, 이직을 고민할 때, 투자 대상을 고를 때도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더 좋은 선택지를 계속 찾다 보면 지금의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반대로 너무 빨리 만족하면 더 나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 인생의 많은 결정이 탐색과 정착 사이의 줄타기인 셈이다.

물론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연구팀도 파인먼의 수학적 해법이 실제 인간의 취향과 사회적 요인을 모두 담지는 못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회가 많을 때는 모험하라. 그러나 끝이 가까워질수록 이미 찾은 좋은 것을 붙잡아라"는 메시지는 여러 선택 상황에 적용해 볼 만하다. 점심 한 끼의 고민에서 출발한 파인먼의 메모는 인간이 불확실한 선택 앞에서 어떻게 탐색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수학적 단서로 반세기 만에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