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도로 위에서 물웅덩이와 아스팔트는 사람 눈에도 쉽게 구별되지 않을 때가 있다. 기존 이미지 센서도 대부분 빛의 밝기 차이를 중심으로 사물을 인식하기 때문에, 표면의 질감이나 방향성, 미세한 구조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서준기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차세대 센서 기술을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빛의 세기뿐 아니라 빛이 어떤 방향으로 진동하는지까지 감지하고, 스스로 동작 상태를 바꿔 최적의 반응을 찾아가는 '자기 재구성 편광 센서 배열' 기술이다.
편광은 빛이 특정한 방향으로 진동하는 성질을 말한다. 일반적인 카메라가 주로 빛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본다면, 편광 센서는 빛이 반사되거나 통과하면서 생기는 진동 방향의 변화를 함께 읽는다. 이 정보는 물체의 표면 상태, 재질, 방향성 등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예를 들어 물, 유리, 금속처럼 빛을 반사하는 물체는 편광 정보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어, 기존 센서가 놓치기 쉬운 정보를 더 풍부하게 얻을 수 있다.
연구진은 텔루륨과 이황화레늄이라는 두 물질을 결합한 '이종구조'를 이용했다. 이종구조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을 층처럼 쌓아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는 구조를 뜻한다. 두 물질은 결정이 놓인 방향에 따라 빛에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지는데, 연구진은 이 특성을 활용해 빛의 방향 정보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구조에서는 빛이 들어오면 두 물질이 만나는 경계면에서 전하가 이동하거나 특정 위치에 머무르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빛의 세기, 파장, 방향에 따라 전류가 흐르는 방향이 바뀌는 '양극성 광응답'이 나타난다. 이를 이용하면 기존 센서처럼 외부 전기 신호로 상태를 조절하지 않아도, 빛 자체만으로 센서의 동작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이번 기술은 센서가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지한 정보를 그 자리에서 일부 처리하는 '인-센서 컴퓨팅'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인-센서 컴퓨팅은 센서와 연산 장치를 따로 두는 대신, 센서 내부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데이터 이동과 연산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저전력·고효율 인공지능(AI) 시스템 구현에 적합하다.
연구진은 실제 실험에서 이 센서 배열이 움직이는 물체를 95% 이상의 정확도로 인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자율주행차가 도로 환경을 더 정밀하게 파악하거나, 의료 영상 장비가 조직의 미세한 차이를 더 정확히 구분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준기 교수는 이번 연구에 대해 "편광 정보를 활용해 기존보다 더 풍부한 시각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AI 비전 기술의 새로운 기반을 제시한 것"이라며 "앞으로 저전력·고효율 AI 시스템 구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센서스(Nature Sensors)'에 지난 4월 게재됐다.
참고 자료
Nature Sensors(2026), DOI: https://doi.org/10.1038/s44460-026-000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