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에는 유인원 시저에게 반기를 든 코바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같은 유인원끼리 내전을 벌인다. 영화 속 장면처럼 같은 집단에서 함께 사냥하고 짝짓기하던 야생 침팬지들이 두 무리로 갈라진 뒤 7년간 '내전'을 방불케 하는 집단 간 살해를 벌인 것이 30년간 관찰 연구로 처음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민족·종교·언어 같은 문화적 표지가 없는 동물에서도 사회적 관계의 균열만으로 집단 폭력이 나타난 만큼, 인간의 집단 폭력도 문화적 요인만이 아니라 관계의 변화와 균열 속에서 촉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 연구팀 등은 9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 응고고(Ngogo) 침팬지 집단을 대상으로 30년간의 행동 관찰, 24년간의 사회관계망 분석, 10년간의 위치 정보 자료를 종합해 집단 분열 과정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응고고 침팬지 집단은 한때 200마리가 넘어 야생 침팬지 집단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응고고 침팬지들의 분열이 2015년부터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짝짓기도 가리지 않고 집단 전체가 하나로 움직였는데, 2015년 6월 무리 중 한쪽이 달아나고 다른 쪽이 추격하는 일이 벌어진 뒤 약 6주간 서로를 피하는 이례적인 기피 행동이 이어졌다. 연구팀의 관계망 분석에서도 2015년이 가장 큰 구조 변화 시점으로 나타났고, 2018년에는 두 집단으로의 영구 분열이 확정됐다.
분열은 곧 폭력으로 이어졌다. 2018~2024년 한 무리가 다른 무리를 24차례 공격해 성체 수컷 7마리를 죽였다. 2021년부터는 새끼 살해로까지 번져 연구팀이 희생된 14마리를 직접 관찰했다. 연구팀은 관찰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더 클 수 있다고 봤다.
왜 친밀했던 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적이 되었을까. 연구팀은 200마리에 육박하는 비정상적인 집단 규모가 구성원 간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긴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적 임계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여기에 먹이 및 번식 경쟁의 심화, 2014년 성체들의 연쇄 사망, 2015년 지도자 수컷 교체, 2017년 호흡기 질병 유행 등이 복합적인 충격으로 작용해 수십 년간 쌓아온 집단 응집력이 무너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어느 한 요인만으로 분열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약 50년 전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도 탄자니아 곰베의 침팬지 집단에서 분열과 뒤이은 살해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연구자들이 먹이를 제공하는 등 인위적 개입이 있었고 관찰도 불완전했다. 이번 연구는 자연 상태에서 집단 분열과 그 이후의 폭력을 장기 데이터로 정밀하게 규명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