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잎에서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 성분을 추출해 눈에 주입하면 안구건조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챗GPT 생성 이미지

시금치는 비타민A가 풍부해 눈의 노화를 막는 데 좋다고 한다. 이제는 시금치가 직접 눈에 들어가 안과 질환까지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금치의 엽록체를 사람 눈에 넣어 광합성 원리로 질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막아낸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국립대 화학생명공학과의 데이비드 타이 웨이 레옹(David Tai Wei Leong) 교수 연구진은 "시금치의 엽록체 성분을 동물의 각막 세포에 주입하고 빛에너지를 포집해 안구건조증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엽록체가 세포 손상하는 활성산소 억제

안구건조증은 눈물이 부족하거나 너무 빨리 증발해 검은자위 각막과 흰자위의 결막에 염증을 일으키는 안과 질환이다. 의학 용어로 건성각결막염이라고 한다. 눈에 염증이 생기면 세포에 해로운 활성 산소가 나온다. 건강한 눈은 NADPH(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디뉴클레오티드 인산)로 항산화 물질을 만들어 활성 산소를 중화하지만, 안구건조증에 걸린 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연구진은 식물의 잎이 광합성을 할 때 NADPH가 합성된다는 데 주목했다. 사람 눈도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면 스스로 염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시판 중인 시금치에서 NADPH를 합성하는 틸라코이드를 추출했다. 틸라코이드는 엽록체 안에 있는 동전 모양의 물질로, 이들이 겹겹이 쌓인 구조를 그라나라고 한다.

식물의 잎에 있는 엽록체의 현미경 사진(왼쪽). 검은색 선들은 동전 모양의 틸라코이드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그라나이다. 광합성 명반응은 이곳에서 빛에너지를 포획해 ATP와 NADPH를 생산하는 과정이다(오른쪽)./영 에버딘대, Adobe Stock

틸라코이드는 빛을 받고 물을 분해해 에너지 물질인 ATP(아데노신 삼인산)와 수소와 전자를 전달하는 NADPH를 만든다. 바로 명반응이다. 엽록체는 다음 단계인 암반응에서 명반응이 합성한 두 물질을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바꾼다. 연구진은 이 중 명반응을 하는 부분만 눈에 넣기로 했다. 시금치에서 틸라코이드를 추출해 400㎚(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나노 입자로 만들었다.

연구진은 안구건조증을 유발한 쥐의 눈에 안약처럼 주입했다. 엽록체는 녹색을 띄지만 나노 입자는 크기가 워낙 작아 투명했다. 실험 결과 눈에 식염수만 주입한 쥐는 각막 두께가 30% 얇아졌지만, 엽록체 성분을 투여받은 쥐는 치료 5일 만에 눈물 분비가 증가하고 각막 두께가 회복됐다. 연구진은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더 좋았다고 밝혔다. 2개월 동안 어떤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 각막 세포에서도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30분 만에 NADPH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됐으며, 활성산소도 억제됐다. 또 안구건조증 환자에서 채취한 눈물에 틸라코이드 나노 입자를 주입하자 NADPH 수치가 20배로 증가했으며, 세포를 손상시키는 과산화수소는 95% 이상 줄었다.

◇수조원대 경제적 효과, 원가도 저렴

안구건조증은 전 세계에서 15억명 이상이 앓고 있다. 눈이 불편하고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넘어 우울증과 불안까지 유발한다. 그만큼 치료비가 많이 나가고 업무 생산성을 떨어뜨려 경제적 손실이 심각하다. 미국에서만 연간 38억4000만달러(한화 5조76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고 추정된다. 눈에서 광합성을 유도하는 치료법이 상용화된다면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예상된다.

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진이 시금치에서 추출한 성분을 나노 입자로 만들어 안구건조증에 걸린 쥐와 인간 세포에 시험하는 모습./싱가포르 국립대

연구진은 실제 환자 대상 임상시험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레옹 교수는 "식물의 광합성 원리로 안구건조증으로 고갈된 분자를 직접 회복시켰다"며 "시금치 유래 물질을 안약처럼 투여하고 일반 조명을 쓰기 때문에 환자 치료에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더구나 엽록체 성분 치료제는 원가도 적게 든다. 연구진은 시금치 한 줌 300원어치면 50명 이상에게 하루 두 번씩 한 달간 투여할 나노 입자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동물이 광합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해양 동물인 갯민숭달팽이는 광합성을 하는 미세 조류에서 엽록체를 흡수한 덕분에 먹이를 먹지 않고도 광합성만으로 몇 개월을 살 수 있다. 일본 도쿄대 연구진은 2024년 식물의 엽록체를 인간 세포에 이식하고 이틀 동안 가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같은 방법으로 치료 효과를 거둔 예도 있다. 중국 저장대 의대 연구진은 2022년 네이처에 관절염을 앓는 쥐의 무릎 관절에 엽록체 성분이 들어간 입자를 주입해 연골 파괴 속도를 늦췄다고 발표했다.

다만 실제 환자에게 쓰기 전에 치료 원리가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 의대의 메리 앤 스텝(Mary Ann Stepp) 교수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번에 확인된 효능이 염증을 억제했다기보다 에너지 생산을 촉진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식물은 광합성에서 에너지 분자인 ATP도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안구건조증 치료에 ATP가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안구건조증에 걸리면 각막 세포에서 에너지 생산을 돕는 신경세포들이 죽는다. 엽록체의 틸라코이드는 ATP를 생산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Cell(2026),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6.04.034

Proceedings of the Japan Academy, Series B(2024), DOI: https://doi.org/10.2183/pjab.100.035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499-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