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내 미생물의 유전체 해독에 따라 미생물의 역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네이처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승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제약업계는 미 식품의약국(FDA)이 신약 승인 이전에 자문위원회를 열지만, 이번의 경우 자문위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이번 승인 여부가 사실상 FDA의 가이드라인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고 주목하고 있다.

1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FDA는 미국의 처방의약품 신청자 수수료법(PDUFA)에 따라 이달 26일까지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신청한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SER-109′ 심사 결과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FDA는 통상 신약 개발 승인까지 1년가량 검토 기간을 거쳐왔다. 다만 신속심사 대상 신약은 절반인 6개월 이내에 발표해왔다. 이달 26일은 세레스가 지난해 10월 FDA가 신속심사에 돌입했다고 밝힌 지 6개월이 되는 시점이다.

SER-109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해 클로스트리듐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 감염증을 치료하는 후보 물질이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균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이른바 ‘수퍼 박테리아’로 사람의 장에 감염되면 염증을 일으킨다. 고령자나 입원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설사를 유발한다. 심한 경우 장이 썩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생쥐들이 자신의 장내 세균 사진을 들고 범인처럼 머그 샷을 찍은 이미지. 인공 감미료가 생쥐의 장내 세균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Science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개발 기업 관계자는 “FDA가 늦어도 26일까지는 세레스가 신청한 품목허가 결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 열렸던 자문위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안전성이나 효과성면에서 FDA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로 처음 FDA 허가를 받았던 스위스 페링파마 슈티컬즈의 리바이오타(REBYOTA)도 승인 이전에 자문위 평가를 거쳤다.

세레스에 따르면 재발성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을 앓았던 성인 환자 182명을 대상의 임상 3상에서 SER-109를 복용한 피험자 88%가 치료 8주 이내 재발하지 않았다. 이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소개됐다. 세레스 측은 미국 내 15만 6000명이 재발성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감염증을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레스의 SER-109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먹는 약’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먹는 치료제로, 가능성을 대외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페링파마의 경우 항문에 투여하는 좌약 방식이어서 환자들의 불편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선 CJ바이오사이언스, 지놈앤컴퍼니(314130), 고바이오랩(348150)이 이번 FDA 승인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현재 장 질환에 국한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향후 항암제까지 적응증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 리제네론의 연구진들이 지난 10월 미생물 반응장치 앞에서 실험 결과를 관찰하고 있다. /리제네론

CJ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영국 4D파마의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후보물질 9종을 기술이전받았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고형암을 대상으로 머크(MSD)의 항암제 키트루다와 병용 임상 1/2상을 승인받은 ‘CJRB-101′과 함께 파이프라인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지놈앤컴퍼니는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후보 ‘GEN-001′과 미국 화이자의 면역항암제 ‘바벤시오(성분명 아벨루맙)’의 병용요법에 대해 한국에서 위암 대상 임상 2상을 수행하고 있다. 고바이오랩은 건선(KBLP-001), 염증성 장질환(KBLP-007), 천식(KBLP-002)을 적응증으로 신약 후보 물질 3종의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국내 기업 한 관계자는 “세레스가 FDA로부터 허가받는다면 마이크로바이옴의 가능성이 대외적으로 인정 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이를 근거로 국내 기업들 역시 미국 등 해외 주요국 임상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FDA가 신약 승인신청을 반려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본격적으로 산업이 성장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레스 측은 FDA 승인만 이뤄진다면 수주 내 제품 상업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