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과의 휴전 발효 후 일시 개방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폐쇄한 가운데, 거리가 가까운 러시아 또는 이란산(産) 원유 수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이 대통령직속 연구기관에서 나왔다. 우리나라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70%에 달하는데, 중동 전쟁을 계기로 수급 다변화에 속도를 내자는 것이다. 특히 미국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 등 경질유 정제가 가능하도록 설비를 개조하는 기업에 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보고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권을 요청하는 참석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수급 다변화 시급…서방 제재에 러시아産 도입 '눈치'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부의장 김성식) 첫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자문회의가 준비한 자료를 미리 살펴봤는데, 내용이 매우 충실하고 우리 정부에서 실제 정책으로 채택할 만한 내용들이 매우 많아서 큰 도움이 됐다"며 "내용을 생략하지 말고 충분히 발표해달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 박원주 자문회의 성장경제분과장은 단기대책으로 ▲러시아·이란산 원유 및 LNG(액화천연가스) 긴급 확보 ▲중국·러시아산 나프타 최대한 수입 ▲원전 최대 가동 및 수명종료 원전 가동 연장 ▲대중교통 한시 무료화 등을 제안했다.

러시아산 원유는 대부분 중질유인 만큼, 현재 국내 시설로 정유하기에 적합하다. 거리상 중동 대비 운송비 등 비용도 대폭 줄어든다. 국제사회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對)러시아 제재를 부과했지만, 미국이 지난달 고유가 대응책으로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 제품 거래를 한시 허용했다. 최근 국내 기업이 러시아산 나프타를 수입했으나, 원유 확보 사례는 아직 없다. 향후 유럽연합(EU)국가 등에 수출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어 기업엔 부담 요소다.

이와 관련해 자문회의는 '동맹은 원칙, 에너지는 예외' 노선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분과장은 "에너지에 대한 기조를 바꿔야 한다"며 "1973년 우리는 서방과 한몸이지만 친아랍 성명을 발표했고, 일본도 동맹과 협력하면서도 사할린 가스전 확보 노력을 계속 해왔다. 동맹 안에서도 에너지는 실용적 예외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경질유 정제할 수있도록 설비 개선해야" 稅 혜택 거론

비(非)중동산 원유 처리가 가능하도록 정유 설비를 개조하는 경우 임시 투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해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통상 우리나라가 주로 들여오는 원유는 중질유로, 정유 시설 역시 중질유 정제에 맞춰져 있다. 미국 등 경질유를 생산하는 국가의 원유는 수입하더라도 처리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박 분과장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호주 등은 호르무즈를 완전히 우회하는 경로"라며 "이쪽으로부터 원유를 확보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각) 전쟁 개시 한 달을 맞아 군사작전이 종료 단계에 근접했다면서 "연료가 필요한 나라들은 미국에서 석유를 사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미국산 원유 의존도는 16% 수준이다. 중동보다 거리가 더 먼 데다, 중질유 중심의 한국 산업구조에도 맞지 않는다. 다만 이 대통령이 '에너지 수급 다변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는 시설 개조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헌법 제93조에 따라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이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다. 부의장은 김성식 전 의원으로, 지난해 12월29일 이 대통령이 '통합' 취지에 따라 보수 진영 정치인인 김 전 의원을 부의장으로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