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8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삼성전자 노사가 18일 세종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서 2차 사후조정을 시작한 것과 동시에, 법원에서 노조에 불리한 판단이 내려왔다. 법원이 삼성전자의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부분 받아들이면서, 노조가 오는 21일 총파업을 강행하더라도 생산 현장에 실질적 타격을 가하기는 어려워졌다.

'파업 카드'라는 노조 최대의 협상 레버리지가 협상장에 앉자마자 흔들린 것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협상 테이블에 앉은 노조가 성과급 제도화 요구를 끝까지 고수하며 '치킨게임'을 지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실리를 위해 한발 물러설지 이날 2차 사후조정의 판세가 주목된다.

◇ 법원, 사실상 사측 손 들어줘… 총파업 두고 셈법 복잡해진 노조

수원지법 민사31부(신우정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삼성전자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대부분 인용했다. 재판부는 "채무자들(노조)은 쟁의행위 기간 중 안전보호시설이 평상시(평일 또는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시간, 가동규모, 주의의무로써 유지·운영되는 것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거나 소속 조합원들에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하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작업시설 손상 방지, 웨이퍼 변질 방지 작업도 쟁의행위 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 초기업노조와 최승호 위원장에 대해 시설 점거, 잠금장치 설치, 근로자 출입 방해 행위도 금지했다.

재판부가 근거로 삼은 것은 노동조합법 38조 2항이다. '작업시설의 손상이나 원료·제품의 변질 또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정상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조항에서, 법원은 '정상적'의 의미를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 즉 평시와 같은 상태"로 해석했다. 사측이 주장한 논리를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라인은 24시간, 365일 연속 가동이 기본이다. 웨이퍼 위에 수십 겹의 회로를 쌓아 올리는 공정은 특정 단계에서 멈추는 순간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웨이퍼 전체가 불량품이 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공정 담당 인력이 일정 비율 이상 이탈하면 웨이퍼가 '날아간다'"고 표현한다. 그 파괴력이 협상 테이블에서 노조의 최강 카드였다.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쟁 결의대회./연합뉴스

하지만 법원이 웨이퍼 보호 인력을 파업 중에도 평시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명령하면서 파업 카드의 파괴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노조 조합원 수가 아무리 많아도,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의 특성상 핵심 공정 인력이 라인을 떠나 생산 라인에 병목현상을 일으키지 못하면 생산 차질 효과는 사실상 제한된다.

◇ 법적공방 우려 생긴 파업 범위… 노조, 강경 입장 고수할까

노조는 가처분 결정에도 파업을 철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최승호 위원장은 2차 심문 직후 "가처분이 일부 인용된다고 해도 적법한 쟁의행위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생산시설 점거나 물리적 방해가 아닌 단순 파업 참여는 이번 결정의 적용 범위 밖이라는 논리다.

노조 입장에서 이 논리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법원이 기각한 항목에는 단순 파업 행위 자체에 대한 금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협박을 통한 쟁의행위 참가 호소'나 '전삼노의 시설 점거' 등이 기각됐다. 단순 조합원의 업무 거부와 집회 참여는 여전히 합법이다.

다만 '평시 수준 인력 유지' 명령이 현장에서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되는지는 법적 해석 공방이 불가피하다. 노조가 특정 공정 인력을 집회에 동원하는 것 자체가 가처분 위반으로 해석될 수 있어, 파업 현장에서의 혼선은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법원이 정한 원재료 관리와 안전 등이 해당되는지 여부가 모호한 파트는 자칫 위법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생산 차질을 일으키기 위한 노조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이 더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이번 교섭에서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고, 연봉 50%로 묶인 OPI(초과이익성과급) 상한을 폐지해 단체협약에 명문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차 사후조정에서 중노위가 제시한 절충안(DS부문 한정, 영업이익의 12%, 2026년 한시 적용)에 대해 노조는 "핵심인 상한 폐지 제도화와 주식보상 확대, 전사 적용이 모두 빠졌다"며 전면 거부한 바 있다.

법원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정부도 노조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담화문에서 "18일 교섭은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며 "노사 모두 이 자리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