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AI(Generative AI)에서 촉발된 산업구조 재편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가 AI 데이터센터 증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촉발된 투자 붐이 이란 전쟁으로 하방 리스크가 커진 세계경제에 성장 버팀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성장세 회복이 대표적이다. 미국 상무부는 4월 30일(이하 현지시각) 2026년 1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이하 전기 대비 연율)로 전 분기 0.5%에서 반등했다고 밝혔다. 미국 GDP 70%를 차지한 개인 소비의 증가율이 둔화(2025년 4분기 1.9%→2026년 1분기 1.6%)했지만, 민간투자 증가율이 크게 오른 것(2.3%→8.7%)이 성장을 주도했다.
미국의 투자 붐은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 반도체 강국의 경기 호황을 이끌고 있다. 4월 30일 대만 주계총처(DGBAS) 발표에 따르면, 대만의 2026년 1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 대비 13.69% 증가했다. 2025년 4분기(12.65%)보다 성장세가 확대됐다. 1987년 이후 39년 만에 최고 성장에 올라탄 대만 경제는 AI발(發) 투자 사이클의 최대 수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흐름은 한국 경제도 흔들어 깨우고 있다. 4월 23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2026년 1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특히 전 분기 대비 1.7% 성장하며, 2020년 3분기(2.2%) 이후 5년 6개월 만에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은행 전망치(0.9%)를 두 배 이상 상회한 것이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둔화했지만, 설비·건설 투자 반등으로 경기 반등에 성공했다. 미국처럼 '투자 주도 성장' 흐름이 연출된 것이다.
AI 투자 붐으로 강화된 글로벌 분업 구조
지난 1분기 미국의 기업 투자 증가율은 10.4%로 3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2025년 4분기 각각 4~5%대였던 설비· 지식재산(IP) 투자 증가율은 17.2%, 13.0%로 확대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보기술(IT) 장비와 IP 등에 대한 기업 투자 급증은 AI가 미국 경제의 핵심 성장 엔진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IT 설비, IP 투자 확대는 2025년 4분기 -1.0%였던 미국 수입 증가율을 21.4%까지 끌어올렸다. 제조업 기반이 약한 미국에서 생산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투자 확대는 곧바로 산업 기자재 수입 증가로 이어진다.
수입의존도가 높은 미국의 설비투자 성과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타고 동아시아로 확산한다. 미국에 AI 반도체 칩과 서버를 공급하는 대만의 2026년 1분기 수출은 33.25%(이하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대만의 1분기 GDP 성장률 약 70%는 수출에서 창출됐다.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강국인 한국 역시 1분기 수출이 10.3% 증가, GDP 성장에서 40% 이상을 기여했다. 미국 AI 투자가 한국과 대만 등의 '수출 중심 성장'을 이끄는 글로벌 분업 구조가 강화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등 보호무역정책을 구사하고 있지만, AI 투자 붐은 오히려 분업을 통한 글로벌 성장 메커니즘을 더 공고히 하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쏠림 성장'
AI 투자 붐은 3년째 1~2%대 저성장에 갇힌 한국 경제에 숨통을 틔우고 있다. 예상치를 크게 웃돈 1분기 성장으로 2026년 연간 성장률이 3%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해외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성장의 중심은 반도체다. 1분기 반도체 수출은 695억달러(약 102조5125억원)로, 1년 전보다 140% 증가했다. 메모리 가격이 최대 10배 가까이 급등한 것이 수출 증가와 투자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 AI발 메모리 품귀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2023년 중단한 평택 P4·P5 팹 증설을 재개했고, SK하이닉스도 용인 클러스터 공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설비·건설 투자 등 총자본 형성은 7개 분기 연속 감소 흐름을 끊고 증가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이 경제 전체로 확산하지는 못했다. 지난 1분기 제조업 생산이 2020년 이후 5년여 만에 최대 폭인 3.0%(이하 전 분기 대비)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증가율이 0.2%로 뚝 떨어진다. 내수와 직결된 민간 소비 증가율은 0.5%에 머물렀고, 음식·숙박과 여가 서비스 생산도 감소했다. 2030세대 15%가량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 청년 실업률이 7%대로 치솟았다.
대만, '플랫폼 경제'로 성장 확산
한국이 반도체 가격 급등 후광으로 '깜짝 성장'했다면, 대만은 AI 공급망을 장악한 구조로 선진 경제에서는 전례 없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다. 대만의 고성장은 AI 반도체 설계·제조·패키징에서 서버 생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낸 결과다. TSMC 중심으로 미디어텍, ASE, 폭스콘, 콴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글로벌 AI 공급망을 장악했다.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돋보이는 한국과 다른 양상이다.
이런 구조는 글로벌 AI 투자 효과를 대만 내수로 연결하고 있다. 빅테크 투자가 대만 기업 매출을 통해 내수 경기를 살리는 구조다. 실제로 대만의 3월 실업률은 2010년 이후 최저치인 3.34%로 낮아졌고, 임금 증가율은 4~5%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4분기 3.45%(이하 전년 동기 대비)였던 민간 소비 증가율이 지난 1분기 4.89%로 확대됐다. AI 호황이 임금 상승과 소비 확대로 선순환하는 것이다.
AI 성패를 가르는 것은 '생태계'
한국은 다양한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처럼 압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한 분야는 많지 않다. 반면 IT 산업에 집중된 대만은 이 집중도를 '플랫폼화'하며 AI 등 첨단산업 공급망을 장악했다.
대만이 AI 투자 붐의 최대 수혜국으로 올라선 것은 공급망의 핵심 공정을 단계적으로 장악한 크고 작은 기업에 축적된 역량이 만들어낸 구조적 성과다. '가격 사이클'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구조와 생태계'로 성장 여력을 축적한다. 범용 메모리 생산 중심 구조에 머무르는 한 AI 투자 붐의 수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급망을 장악한 경제는 투자와 생산, 고용과 소비로 이어지는 성장의 선순환을 이룬다. AI 시대의 성패는 어떤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