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다가오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통신비 인하 압박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은 표심 공략을 위한 대표적인 민생 공약으로 꼽힌다. 사실상 전 국민이 휴대전화를 쓰고 있는 데다, 매달 이용료를 납부하고 있어 통신비 인하는 실생활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요소다.
그러나 20대 대선을 치를 주요 후보들의 공약에서는 좀처럼 통신비 관련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전까지 대선에서 후보들의 ‘단골 소재’였던 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력 후보들이 법조인 출신인 데다, 부동산 등 산적한 문제로 통신 공약이 밀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대선 후보 ‘단골’ 통신비 공약…이재명 후보만 2건
22일 제20대 대선 주요 후보들 공약을 살펴보면 통신비 관련 공약을 내세운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유일하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1월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공약’ 3번째로 ‘휴대폰 안심 데이터, 무료 제공’을 공개한 뒤 올해 1월 48번째 공약으로 ‘국군 장병 통신요금 반값 실현’을 내걸었다.
휴대폰 안심 데이터, 무료 제공 공약은 기본 데이터 용량을 모두 소진해도 최소한의 메신저와 KTX 예매나 전자 결제 등 공공서비스 만큼은 이용할 수 있도록 전 국민 ‘안심 데이터’를 도입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재 국내 이동 통신사들은 기본 데이터 사용량을 소진한 뒤 최소 수준의 속도로 데이터 이용을 보장하는 옵션 상품을 3000~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무료로 전 국민에 보장한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올해 내 완료하겠다는 구체적 시점도 언급했다.
새해 들어서는 군 장병의 통신 요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 도입한 요금할인 폭 20%를 50%까지 상향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장병들의 하루 평균 휴대전화 이용시간(3~4시간)을 고려하면 월 이용요금이 과도하다는 이유에서다. 병사 기준 월급 67만원의 10%가 통신비로 지출되는 셈이다. 이 후보의 계획대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이뤄지면 100G 요금제 기준 월 요금은 3만4500원이며, 전 국민 대상 선택약정할인까지 추가하면 1만7250원까지 낮출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은 아직 통신비 관련 공약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지난해 12월 통신 원가 요금제 도입 계획을 언급한 바 있지만, 공약으로 이어지지 않은 상태다.
◇ ”유력 후보들, 법조인 출신이라 관심 없는 듯”
가계통신비 인하는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대선을 앞둔 후보들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시민단체들도 선거를 앞두고 통신사의 ‘폭리’ 주장을 펼치며 통신비 인하를 요구하고 나선다. 실제 지난해 12월 28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LTE 서비스 상용화 10년을 맞아 이동통신 3사가 지난 10년간 18조6023억원의 초과이익을 거뒀다”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대선후보들에게 LTE 반값통신비 정책 추진을 촉구했다.
국내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대선만 되면 일부 시민단체에서 통신비 인하압박에 나선다”라며 “다양한 통신 서비스 중 LTE만 떼어 내 ‘초과이익을 낸다’는 평가는 통신산업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요구 이후 나온 공약은 이재명 후보의 국군 장병 통신요금 반값 실현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공약은 국군 장병이라는 특정 계층만 적용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전까지 나왔던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는 결이 다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에서 월 1만1000원의 기본료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18대 대선 당시 연 1~2만원 이동통신 가입비 폐지를 약속했고, 2015년 가입비가 폐지된 바 있다.
한국IT법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주원 김진욱 변호사는 “유력 대선 후보들이 법조인 출신이라 통신비 인하 관련 인식이 부족할 수 있다”면서도 “IT 관련 전문가이기도 한 안철수 후보가 추후 관련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통신사들이 대선 후보들 캠프에 우호 인력을 채워 넣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