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간 폭풍 성장한 네이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다시 한번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비대면 생활이 일상화하면서 네이버의 대표 서비스인 검색뿐 아니라 커머스, 웹툰 등 콘텐츠, 클라우드까지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네이버 하나면 다 되는 일상은 편리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네이버 없이 살 수 없게 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시리즈로 파헤쳐 본다. [편집자 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블룸버그

최근 주식투자를 시작한 김지민(35·가명)씨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해외 시황 뉴스를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하면서는 주말에 갈 캠핌장을 찾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 후기를 꼼꼼히 살펴본다. 네이버 예약하기로 캠핑장 예약까지 마친다.

점심시간에는 네이버 QR 체크인으로 회사 인근 식당에 들어간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네이버 쇼핑 카테고리에서 ‘얇은 긴팔티’를 검색해 간절기 입을 만한 옷을 고른다. 결제는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가 있으니 숫자 여섯 자리만 누르면 된다.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네이버페이 포인트도 살뜰히 챙겼다. 집에 돌아온 김씨는 어젯밤 못다 본 네이버 웹툰을 몰아보다 잘 작정이다. 김씨는 “얼마간 격리돼 있어도 스마트폰과 네이버만 있으면 살 수 있을 만큼 편리하다”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네이버 공화국’이 되고 있다. 5000만 대한민국 인구의 80%가 넘는 4106만명(모바일인덱스 6월 월간활성사용자 수 기준)이 네이버를 쓰고 있다. 네이버 안에서 쓸 수 있는 결제시스템 네이버페이 이용자도 절반이 넘는 3000만명에 달한다. 사용자가 많으니 코로나19 시대 전자출입명부 해결사로도 뛰어들었다.

삼성SDS의 사내벤처에서 싹을 틔워 1999년 자본금 5억원의 ‘네이버컴’이란 이름으로 닻을 올린 네이버가 22년 만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뒤를 잇는 유가증권 시장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2002년 10월 코스닥 시장에 첫 상장하던 사업 초창기 때만 해도 네이버의 시총은 약 3000억원에 불과했으나 현재 70조원을 기록 중이다. 몸값이 200배가 넘게 뛴 셈이다. 그만큼 네이버의 현재·미래에 대해 투자자들이 베팅하고 있다는 의미다.

코스닥 시장 상장 첫해 각각 746억원, 302억원 수준이었던 네이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5조3042억원, 1조2153억원 수준으로 체급이 달라졌다. 이 기록은 해마다 새롭게 써질 것으로 증권업계는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네이버는 매출 3조1626억원, 영업이익 6244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국내 1위 인터넷 검색 포털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광고, 커머스 사업뿐 아니라 웹툰, 제페토 등 콘텐츠 서비스, 핀테크, 클라우드 등의 신사업으로도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신사업 부문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50%를 넘어섰다. 더는 검색으로만 먹고 사는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덕에 상장 첫해 10여개 불과했던 계열사는 올해 6월 말 기준 약 50개까지 늘었다. 직원 수 역시 283명에서 4235명까지 불었다. 같은 기간 직원 1인 평균 급여는 3411만원에서, 지난해 처음 1억원대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검색엔진을 장악한 네이버가 플랫폼 사업 특성상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네트워크 효과’에 기대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는 한 이용자의 수요가 다른 이용자의 추가 수요를 불러오는 현상을 말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플랫폼은 가상공간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거래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네트워크 효과가 일어나 해당 분야의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부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가 많을수록 할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지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면 결국 소비자를 자사 플랫폼 안에 가둘 수 있게 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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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 망하지 않는다

‘검색 공룡’으로서의 확고한 현재 지위를 갖는 데 탄탄대로만 걸었던 건 아니다. 출범 당시에는 네이버도 후발 검색엔진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당시 야후, 다음, 라이코스 등이 국내 인터넷 시장을 주름잡고 있었다.

네이버는 당시 한글 검색에 약했던 외국계 포털의 단점, 토종 업체의 약점이었던 기술력을 보완하는 데 집중해 차별화된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2000년 한국어 데이터 기반의 ‘통합검색’을 세계 검색 포털로는 처음으로 도입한 데 이어 2002년 네이버 검색의 대명사로 통하는 ‘지식검색’, 2005년 누리꾼들이 어떤 정보를 가장 많이 찾고 관심 있어 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실시간 급상승 검색’ 등을 시작한 것은 그 결과물이었다. 이 덕에 네이버는 검색점유율 90%에 육박할 정도로 국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현 카카오 창업자 겸 의장인 김범수와의 협업은 네이버가 버틸 수 있는 큰 실탄이 됐다.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창업자는 삼성SDS 출신 동료로 게임포털 ‘한게임’을 창업한 김범수와 손잡고 2000년 한게임을 인수, 합병하기로 했다. 이용자 수를 단기간 내 끌어올릴 방안을 고민하던 이해진과 이용자 수는 늘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던 당시 김범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기존 무료였던 한게임 내 게임을 유료화하면서 발생하는 매출은 네이버의 기술력으로 이어졌다.

한게임에 이어 네이버는 2000년 인터넷 검색 기술업체 서치솔루션까지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간판도 바꿨다. 네이버컴·한게임의 비전을 모두 담아 NHN으로 새 출발했다. 사명은 ‘넥스트 휴먼 네트워크(Next Human Network)’의 줄임말이다.

현 사명이 된 것은 2013년이다. NHN의 게임 사업부문이 인적 분할됐고, 김범수 의장을 비롯한 한게임 출신 대부분이 회사를 나갔기 때문이다. 서치솔루션 창업자인 이준호 NHN 최고운영책임자도 한게임을 맡으며 떠났다. 나 홀로 회사를 끌게 된 이해진 창업자는 네이버라는 간판을 다시 달았다.

이해진 창업자는 일찍부터 해외시장을 노린 것으로 유명하다. 창업 이듬해인 2000년부터 일본 검색시장에 진출했다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05년 철수했다. 2007년 재도전한 뒤에도 4년 이상 고전하다가 2011년 서비스를 시작한 모바일 메신저 ‘라인’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라인은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일본에서는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이 창업자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소중한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절실하다는 점에 착안해 밤새가며 만든 서비스다. 현재 라인은 라인페이 등 핀테크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으며 주력시장인 일본을 비롯해 한국, 대만, 남미, 스페인 등에서 1억8700만명(올해 3월 월간활성사용자 수 기준)이 쓰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합작법인인 A홀딩스를 출범하고, 검색포털 야후재팬과 라인의 경영통합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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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의 그림자…독과점·여론조작·내부 문화

덩치가 커질수록 그림자도 커진다. 네이버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독과점이다. 젊은 세대의 검색 트렌드가 네이버에서 유튜브 등으로 넘어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네이버의 국내 인터넷 검색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약 60% 수준에 달한다(인터넷 트렌드 집계). 여전히 10명 중 6명은 네이버로 검색한다. 소수의 경쟁자와 경쟁 중인 커머스, 웹툰 등에서도 네이버가 시장을 선도 중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네이버의 독과점이 과거 전통 산업의 대기업 독과점보다도 폐해가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독점의 폐해가 가격 인상에 집중돼 있었다면 현재 IT 공룡 플랫폼은 정보까지 독점해 경쟁 플랫폼이 진입할 수 없도록 만든다”라며 “미국에서 아마존이 먼저 보인 이 행보를 한국에서 네이버가 따라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플랫폼 중개 사업의 특성상 고객 개인화 정보를 많이 가질수록 서비스 품질 경쟁에서 유리한데, 한 번 독점이 이뤄지면 중개 수수료를 올려도 후발업체들이 가격 인하 정책만으로는 독점 플랫폼의 서비스 품질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예전 재벌 독점에 비해 나아진 게 없다”라며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이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서비스 품질을 내세운 네이버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은 골목까지 매우 깊숙이 침투 중이다.

지금까지 네이버를 키웠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와 뉴스토픽은 이제 없다. 실검과 뉴스토픽은 선거의 계절만 오면 여론 조작 논란에 시달려왔다. 이용자들이 특정 검색어를 순간적으로 많이 검색하면 순위에 오르며 동시에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당시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의혹은 관련자들의 실형으로 일정 부문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결국 네이버는 성장의 자양분 역할을 했던 서비스를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에서도 잡음이 나온다. 단기간 내 빠르게 성장을 이뤄온 탓에 조직문화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한 네이버 직원이 오랜 기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며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네이버는 책임자에 대한 직무정지 등의 조치를 했지만, 여전히 회사 안팎에선 톱다운(상명하달식) 방식의 의사결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