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부터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의 머릿속엔 ‘원격진료’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한 진단과 뛰어난 수술 실력으로도 환자를 보살필 수 있지만, 그렇게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제한 없이 제공되도록 ‘의료 사각지대’를 줄여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의대 진학 전후로 장애인, 노숙자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꾸준히 나가면서 장지호 대표는 사회적 약자에게 비대면 진료가 절실히 필요함을 확신하게 됐다.
결국 지난 2019년, 의대 3학년이었던 장 대표는 고민 끝에 의사 가운을 잠시 벗어두고 본격적인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성공이 보장된 의사라는 길에서 빠져나오기가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원격진료는 의료계 사정을 잘 이해하면서 의료인들과 깊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만이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의대 출신이라 그런 부분에서 강점이 있었고,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는 신념과 사명감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닥터나우는 국내 최초로 비대면 진료와 처방약 배달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원격의료 플랫폼이다. 현재 약 360여곳의 병원·약국과 제휴를 맺고 있으며, 내과·가정의학과·피부과·한방의학과 등 총 15개 진료 과목에서 비대면 진료 및 처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존 대면의료 체계에선 환자, 의사, 약사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존재했지만, 닥터나우를 이용하면 환자와 의료진이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의료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다.
환자가 닥터나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병원, 혹은 의사를 골라 진료를 신청하면 10분 내로 전화, 혹은 화상통화가 연결된다. 눈에 보이는 상처나 이상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 함께 첨부할 수도 있다. 이렇게 비대면 진료를 받으면 병원은 환자에게 처방전을 문서 파일로 전송한다. 환자가 그 처방전을 갖고 직접 약국에 방문하면 약국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해 환자에게 전달한다. 제휴 약국에 처방전을 전송해 약을 배송받을 수도 있다. 약 배송은 닥터나우 측과 계약한 배송 드라이버를 통해 이뤄진다. 이 모든 과정이 1~2시간 안에 이뤄진다는 게 닥터나우 측 설명이다.
지난 2020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닥터나우는 현재 누적 이용자 70만명, 앱 마켓 다운로드 수 45만건을 돌파하며 국내 1위 원격진료 플랫폼 자리에 올라섰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 새한창업투자, 해시드, 크릿벤처스 등 여러 벤처캐피탈로부터 1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현재 닥터나우는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감염을 우려한 환자들이 방문을 줄인 탓에 경영이 위축됐던 1차 의료기관(의원급)과 약국에 비대면 진료 수요를 유입시키며 전에 없던 ‘상생 모델’을 구축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면과 전화로 장지호 대표의 목표와 계획을 들어봤다.
一원격의료 필요성을 가장 크게 절감한 계기가 있나.
“두 가지다. 일단 의과대학이라는 사회에 들어와 직접 원격진료를 체험하면서 그 편리함과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의사들끼리는 비대면 진료가 법적으로 허용된다. 아픈 곳이 있으면 사진 등을 찍어 해당 과목 의사에게 보내주며 어디가 문제인지,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직접 병원을 방문해 접수하고 의사를 기다리고 진료를 받고 약을 사서 집에 돌아오는 그 긴 과정과 비교해보니 비대면 진료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의료 사각지대다. 의대 입학 전후로 봉사활동을 5년 정도 꾸준히 나갔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노숙자를 보며 이분들도 비대면으로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훨씬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의사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의료행위는 그야말로 공익 행위 그 자체 아닌가. 의료 소외계층도 최소한의 진료·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의료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그러다 결국 창업을 결심했고 2019년에 휴학을 하기에 이르렀다.”
一다시 의사 신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건가.
“지금은 닥터나우를 비롯해서 원격의료 서비스 산업 자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회사를 키우는 것 이외에 다른 상황은 고려해본 적 없다.”
一창업 과정에 우여곡절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어려움은 비대면 진료 공식 허용 여부를 놓고, 여러 관련 단체들이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면서 지금까지 300만건을 훌쩍 넘는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정부 또한 비대면 진료가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기여한 점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와 약사를 비롯해 관계 부처, 우리와 같은 기업까지 해서 협의를 이뤄나가야 할 주체가 많다. 이 때문에 원격진료를 법으로 공식 허용하는 것은 여전히 ‘검토’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 창업 과정에서도 그렇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 그 점이 가장 큰 문제다.”
一의료인들 반발이 강한 분야에 발을 들였는데 정부 지원은 좀 받았나.
“대체로 정부 쪽 반응은 다행히 긍정적인 덕에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창업을 결심한 계기도 그렇지만 원격의료는 공익적 측면이 강하고 닥터나우 또한 사회적 기업(소셜벤처)으로서 이윤 추구보다는 의료 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로부터는 ‘소셜벤처 액셀러레이팅 지원’을 받았고,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식 지원하는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12월에는 국회 유니콘팜 공식 파트너사로도 선정됐다.”
一최근 의사들이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난 걸 체감하나.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헬스케어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주요하게 작용하는 키워드 중엔 디지털, 비대면도 있지만 최근에는 환자 증상이 중증으로 진행되는 걸 방지하는 예방의학 쪽도 주목받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미래에는 의사를 포함한 각종 의료계 종사자들이 전문 지식과 기술을 배경으로 좀 더 고도화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구현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一코로나19 때문에 원격진료 규제가 한시적으로 풀린 상황이다. 예상했던 일인가.
“그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했겠나(웃음). 의대를 휴학하고 창업에 뛰어든 시기가 절묘하게 맞물린 건 맞지만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원격의료 대중화는 내 신념이자 목표였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2020년 3월 대구 지역에 코로나가 무섭게 퍼지는 걸 보고 ‘배달약국’이라는 앱을 만들어 약이 필요한 분들에게 직접 약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닥터나우의 전신이라 보면 된다. 코로나19에 걸리는 것이 두려워 직접 약국에 방문하길 꺼리는 사람들이 당분간 계속 많아지리라 생각한 것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 전부터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사업을 꾸릴 수 있었다.”
一닥터나우의 수익 모델이 궁금하다.
“현재 닥터나우 서비스에서는 수익이 전혀 나지 않고 있다. 플랫폼 업체이기 때문에 제휴 의·약사들이 우리 앱을 통해 진료를 하고 약을 조제하고 있지만 거기서 수수료를 하나도 떼지 않는다. 심지어 약 배송비도 전부 회사가 부담한다. 현시점에서 우리 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원격의료라는 서비스 자체가 자리를 잡고 저변을 넓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一그렇다면 어떻게 회사를 유지하나.
“일단 정부 지원이 있다. 정부에서도 원격의료의 사회적 가치와 혁신성을 인정해주고 있다. 덕분에 소셜벤처 명목으로 정부 지원을 꾸준히 받고 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100억원 규모로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긴 자금으로 회사를 유지하고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一10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 유치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투자자들이 닥터나우 서비스를 실제로 사용해본 뒤 투자를 결정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모 기업 투자자는 “일단 한 번 써보니 두세번씩 쓰게 됐고 나중에는 계속 이용했다”라고 말하더라. 원격진료가 얼마나 편리하고 유용한 서비스인지를 투자자들이 피부로 경험할 수 있게 하면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졌다.”
一의약사들과 제휴를 맺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사업 초기에는 직접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니며 닥터나우라는 원격의료 서비스가 있다는 걸 홍보했다. 그러면서 놀랐던 건 생각보다 많이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반응을 보며 열심히 발로 뛰며 제휴 병원과 약국을 늘려나갔다. 덕분에 지금은 반대로 홈페이지를 통해 제휴 신청이 정말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一통계를 보니 대형병원보다는 동네병원에서 비대면 진료가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환자들이 병원, 약국에 가는 걸 꺼려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닥터나우 덕분에 비대면 진료 환자, 손님이 늘면서 새로운 수익채널이 생겼다는 말을 의사들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닥터나우를 비롯한 원격의료 서비스와 병원, 약국 사이 관계가 ‘상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一이용자들은 서비스에 어떤 반응을 보이나.
“이렇게 편리한 서비스가 왜 지금까지 없었는지를 많이 물어본다. 병원에 가기 쉽지 않은 직장인이나 아이 키우는 가정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는 피드백이 많다. 특히 어린아이는 가족이 대리 접수를 하면 부모가 대신 이용할 수도 있어서 맞벌이 가정 등에서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말도 많다. 최근에는 재택치료, 자가격리 등 상황에서 닥터나우를 통해 진료 및 약 배송을 이용하시는 분도 많아졌다. 또 날씨가 추워지면서 감기 등 내과 진료를 많이 보는 편이고 이비인후과, 피부과, 소아과 쪽 진료과목이 특히 더 이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一전에 없던 신생 사업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애로사항은 없나.
“현재 대한민국 안에서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매우 많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이런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걸 많이 모르고 있다.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一사실 비대면 진료 사업은 코로나19 이후가 문제다. 어떤 식으로 준비하고 있나.
“닥터나우가 지난 2년간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통해 의료서비스 효율화, 의료공백 보완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정부는 물론 의료계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중이다. 또 동네 병원, 약국과 제휴를 통해 이뤄온 상생의 성과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플랫폼 업계, 의사, 정부, 소비자 등 각 분야 대표가 모여 원격진료의 보완점과 미래에 관해 토론하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 긍정적인 건 토론 참석자 모두 언젠가 원격진료가 합법화 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는 점이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희망적인 신호라고 본다.”
一게임 기업 컴투스와 메타버스 협업도 맺었다. 비대면 진료와 메타버스가 어떤 식으로 어우러지는 건가.
“컴투스가 자체개발 중인 올인원 메타버스 플랫폼 ‘컴투버스’에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구현할 예정이다. 컴투버스 내 가상 오피스, 쇼핑몰, 테마파크 등 다양한 공간 중 하나로 병원을 만들어 그 안에서 닥터나우의 비대면 진료가 제공되는 방식이다.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세계에서도 쉽고 편하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고차원적 시도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一닥터나우의 최종 목표, 미래상 등을 이야기해 달라.
“현재 복지부에서 추진 중인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에 참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종의 장기 프로젝트다. 고객들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기 건강 상태가 어떤지, 자주 이용하는 의료 서비스가 어떤 분과인지 등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면, 닥터나우가 이를 활용해 고객별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를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는 진료와 처방을 넘어 질병 예방을 위한 건강관리까지 사람들의 일상 속 의료 생활을 책임지는 ‘슈퍼 앱’으로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