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 영향으로 1분기 실적이 대폭 개선됐던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하반기에는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쟁 기간에 원재료를 비싸게 수입한 데 따른 '역(逆)래깅'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역래깅 효과란 높은 가격에 원재료를 산 뒤 판매하는 시점에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2일 산업통상부 통계 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에틸렌 현물 가격은 톤당 960달러, 나프타 현물 가격은 톤당 761달러였다.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199달러를 기록했다.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제품 가격인 에틸렌 가격에서 원재료인 나프타의 가격을 뺀 이 수치가 클수록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진다. 업계에 따르면 손익분기점이 되는 스프레드는 200달러 선으로 추산된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지난 4월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5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석유화학 제품 가격 역시 크게 오르면서 이전에 매입해뒀던 나프타와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올해 1분기 석유화학 기업들은 '래깅 효과(원료 구매와 석유 제품 판매 간 시차로 발생하는 마진 변동)'로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영업이익 735억원을 기록하며 10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도 1분기 16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SKC 화학 사업도 각각 341억원, 96억원의 이익을 냈다.
문제는 하반기부터 역래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석화 기업들은 전쟁 기간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확보한 원재료를 공정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유가가 떨어지면 석유 제품 가격도 약세를 보이며 마진이 줄어든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하반기에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예상 영업 손실은 474억원으로 적자 전환하고, 4분기에도 400억원의 영업 손실을 이어갈 것으로 추산됐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존립을 위협했던 중국발(發) 공급 과잉도 여전한 상황이다. 지난 2020~2024년 세계 에틸렌 생산 능력은 약 4500만톤 확대됐는데, 이 중 중국의 생산 물량이 2500만톤에 달했다. 중국 업체들이 싼 값에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최근 수 년 간 적자에 허덕였다.
정부와 업계가 추진 중인 석유화학 구조조정도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 능력의 18~25%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울산 산업단지에서 내년 초 상업 가동을 앞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를 두고 기업 간 입장 차이가 큰 데다, 최근 실적이 개선된 기업들이 설비 폐쇄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구조조정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으로 인한 일시적인 실적 개선은 올 2분기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며 "하반기에는 역래깅 효과,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다시 실적 악화가 예상되는 만큼 설비 감축, 장기적으론 스페셜티 소재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