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21일 2차 발사에 성공했다. 1차 발사 실패 이후 8개월 만이다. 이번 성공은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로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수백개의 국내 기업이 발사 성공을 함께 이끌었는데, 업력 10년 안팎의 중소·벤처기업도 활약을 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누리호는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한화(000880),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이 협력해 개발했다. 누리호 전체 사업비의 80%인 1조5000억원이 이들 기업에 집행됐다. 300개에 달하는 기업에서 500명가량의 전문가가 합심했다. 그 덕에 한국은 자력으로 실용급 위성을 발사하는 능력을 입증한 7번째 국가가 됐다. 9년 전 3차 발사에 성공한 나로호(KSLV-Ⅰ)는 1단 엔진 개발을 러시아에 의존했다.
국산 기술 개발에는 창업한 지 만 10년도 채 되지 않은 중소·벤처기업이 다수 참여했다. 올해로 창업 10년이 된 덕산넵코어스는 누리호의 위성항법수신기를 개발하고 만들었다. 누리호가 우주에 있는 항법위성에서 신호를 받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우주의 극저온 환경과 발사체의 강한 진동 등을 견뎌야 해 상당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PNT(위치·항법·시각)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덕산넵코어스는 누리호 개발 초기 단계부터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자율주행과 도심형 항공모빌리티(UAM) 분야 진출을 준비 중이다. 덕산넵코어스의 최대주주는 59.97%의 지분을 가진 덕산하이메탈(077360)이다.
7년차 중소기업 비츠로넥스텍은 엔진 개발에 참여했다. 비츠로넥스텍은 비츠로테크(042370)의 100% 자회사다. 발사체 1, 2단의 75톤(t) 엔진 연소기와 가스발생기, 터빈배기부, 엔진공급계 등 부품을 개발하고 제작했다. 2016년 설립된 비츠로넥스텍은 우주항공·핵융합·플라즈마 등 응용과학기술 전문기업인데, 국내 최초로 액체로켓엔진 제작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액체로켓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을 말한다. 누리호는 총 3단의 액체로켓으로 구성돼있다.
비츠로넥스텍은 핵융합 발전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형 핵융합 연구로(KSTAR)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융합 장치 전문 제작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누리호의 소음, 진동 설계·시험은 8년차 벤처기업 브이엠브이테크가 맡았다. 브이엠브이테크는 소음 진동 분야 전문 기업으로, 주로 기술 자문, 측정, 해석 등을 한다. 세계적 기술 기업인 독일 지멘스의 공식 파트너사다. 국내에선 GS(078930), 포스코, 현대, 삼성, LG(003550), 롯데 등과 협업하고 있다.
9년차 중소기업 이앤이는 센서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계측 정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제어하는 제어계측계를 맡았다. 극저온용 센서 등을 생산하고 있고, 항공기용 계류장치인 착함장치 국산화에 성공했다. 방산품 관련 엔지니어링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전력시스템을 개발한 시스코어, 단열재를 만든 에너베스트 등 중소·벤처기업도 누리호 발사 성공에 기여했다.
누리호 발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성공을 이뤄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국은 1990년대 고체로켓에서 시작해 2013년 나로호에 이르기까지 국가 주도 아래 해외 협력으로 발사체 개발을 진행해왔다. 나로호 성공 이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자체 개발을 시작했고 국내 기업간 협업으로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이뤘다. 누리호 4차 추가 발사 이후 정부는 발사체 기술을 민간에 이전해, 미국의 스페이스X처럼 민간이 우주산업을 이끄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우주 분야 스타트업 지원도 강화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우주개발진흥법을 개정, 올해부터 우주 분야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스페이스 이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한다. 초소형위성 기반 사업모델 개발과 사업화를 최대 5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우주산업이 활성화되고, 글로벌 우주기업이 배출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