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중국 항저우시 빈장구의 중심가. 고층 건물과 호텔, 상업시설 등이 밀집한 이 곳에 위치한 지커의 전시관에 들어서니 주력 모델인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7X가 눈에 들어왔다. 지커는 중국의 대형 완성차 기업인 지리자동차그룹의 고급 브랜드다.

뒷좌석에 앉아 전시관을 출발했다. 약 5분 가량 주행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다음, 동승한 운전자가 목적지를 입력한 후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자 7X가 스스로 주행을 시작했다.

대시보드 스크린에는 실시간 주행 상황을 나타내는 화면이 활성화됐다. 7X는 스스로 차선을 바꾸고 좌·우회전을 번갈아 하며 정해진 경로에 맞게 주행을 이어갔다. 옆 차로에서 추월을 시도하는 차량이 들어오자 속도를 늦추기도 했다.

29일 중국 항저우시 빈장구 중심가에 위치한 지커의 전시관에 준대형 SUV인 8X와 대형 MPV인 009가 전시돼 있다. /진상훈 기자

10분 정도의 자율주행을 통해 7X는 목적지였던 지커 전시관에 무사히 도착했다. 하차한 후 스마트키의 자동 주차 버튼을 누르자 정해진 공간에 스스로 완벽하게 주차도 했다. 7X는 올 하반기에 국내 시장에서도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BYD가 국내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올해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커는 이미 법인 설립과 딜러사 선정 등을 마치고 국내 판매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지커에 이어 중국 내에서 혁신적인 모빌리티 기업으로 꼽히는 샤오펑과 중국 5대 완성차 제조사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체리자동차 등도 한국 상륙을 준비 중이다.

최근 수 년 간 눈에 띄게 성장한 기술력에 가성비까지 갖춘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잇따른 진출에 오랜 기간 국내 시장을 석권해 온 현대차·기아도 비상이 걸렸다.

◇ 지리차그룹 고급 브랜드 지커, 올 하반기 국내 상륙

6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커는 지난해 국내에서 법인명 '지커인텔리전트테크놀로지코리아'로 등기를 마치고 진출을 공식화했다. 2022년부터 2년 간 아우디코리아를 이끌었던 임현기 전 대표를 지난해 한국 법인 대표로 선임한 데 이어 4곳의 딜러사 선정도 마쳤다. 이달 중순에는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에 브랜드 갤러리를 열 예정이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지커가 앞서 진출한 BYD와 다른 위치에서 국내 시장을 공략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BYD는 저렴한 가격의 볼륨 모델을 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한 단계 앞선 브랜드 가치와 성능을 갖춘 지커는 보다 높은 가격대의 차종에서 경쟁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29일 중국 항저우시에서 지커의 중형 SUV인 7X의 자율주행 모드를 활성화한 모습. 운전자가 손을 떼자 차는 스스로 목적지를 향해 주행했다. /진상훈 기자

지커는 중국에서 7X 외에 준대형 SUV인 8X와 대형 SUV 9X를 판매 중이다. 8X와 9X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또 전기 대형 다목적차량(MPV)인 009와 이 차의 고급화 모델인 009 그랜드도 라인업에 포함돼 있다. 특히 009 그랜드는 뒷좌석 탑승객에게 초점을 맞춘 4인승 모델로 다양한 호화 편의사양을 갖춰 중국 부유층과 기업체 고위 임원 등에게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지커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성능과 안전·편의사양, 디자인 등이 모두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시장에서 중국차는 브랜드 가치가 아직 낮은 편이지만, 지커는 고급차로써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다"며 "국내에서 제네시스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책정할 경우 예상을 웃도는 판매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 '대륙의 테슬라' 샤오펑도 출격 대기… 니오, IT 기반 車 브랜드로 눈길

지커에 이어 국내 진출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업체는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 샤오펑이다. 샤오펑은 이미 국내에서 '엑스펑모터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등기를 완료한 상태다. 샤오펑의 재키 구 기술위원회 회장은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 2025'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한국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설립된 샤오펑은 '중국의 테슬라'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 시장에서 가장 혁신적인 전기차 업체로 꼽힌다. 특히 샤오펑의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인 'XNGP'는 중국에서 가장 앞선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오펑은 또 플라잉카를 포함한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사업과 휴머노이드 로봇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9일 중국 항저우시 빈장구 중심가에 위치한 샤오펑 매장에 준대형 전기 세단인 P7 2세대 모델이 전시돼 있다. /진상훈 기자

샤오펑의 국내 첫 출시 모델로는 준대형 전기 세단인 P7이 꼽힌다. P7은 2020년 출시된 차로 지난해 중국에서 2세대 신형 모델이 출시됐다. P7은 800볼트(V)의 고전압 플랫폼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10분 충전으로 525㎞를 주행할 수 있다. 또 샤오펑의 자체 개발 인공지능(AI)인 '튜링 AI'가 적용돼 레벨 4 수준의 자율 주행 성능도 갖췄다.

아직 국내 진출은 예정돼 있지 않지만, 니오도 첨단 전기차 브랜드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니오는 창업자를 포함한 주요 경영진이 IT 업계 출신으로 충전 대신 3분 만에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교체식 배터리(BaaS)' 인프라를 중국 전역에 구축한 곳이다. '노미'라는 차량용 AI 어시스턴트 등 여러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샤오펑과 함께 중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업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고민 커진 현대차·기아… "혁신 투자 확대·브랜드 가치 강화가 해답"

잇따른 중국 업체들의 국내 진출로 현대차·기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테슬라의 점유율 확대로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하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했다는 중국차와도 경쟁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중형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5의 경우 지난달 국내 판매량이 2410대로 전월 대비 25.3% 감소했다. 전기차 세단인 아이오닉6와 대형 SUV 아이오닉9의 판매량도 전월과 비교해 각각 45.1%, 29.2% 줄었다.

지커는 BYD보다 다양한 편의사양을 갖춘 모델을 순차적으로 국내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은 지커의 대형 MPV 009의 4인승 고급화 모델인 009 그랜드의 뒷좌석. 탑승자들은 1열 좌석 뒤에 붙은 대형 LED 스크린을 통해 여러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이용하고 화상회의 등도 할 수 있다. /진상훈 기자

반면 테슬라의 지난달 국내 판매량은 1만1130대로 전월 대비 41.5%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29.6% 급증한 수치다. BYD 역시 지난달 국내에서 전월보다 73.9% 증가한 1664대를 팔았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중국 주요 완성차 기업들의 성능은 현대차와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일부 기술은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현대차·기아가 긴장을 늦출 경우 혼다나 폴크스바겐 등 저물어가는 일본, 독일 업체들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디자인 등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해 경쟁력을 높이고,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가치에서 우월적 위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