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베트남 다낭시 롯데마트. 이 곳은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과 현지 소비자가 몰려 항상 붐빈다.
식품을 파는 4층은 이날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장을 마친 소비자 물결에 매장 입구를 찾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힘들게 들어서니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농심(004370) 신라면 컵라면이 보였다. 성인 남성 키보다 두 배는 더 높이 쌓여 있었다.
컵라면 1개 가격은 3만5000동(약 1800원)으로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다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100달러 남짓한 베트남 수준을 감안하면 체감상 9배 가까이 비쌌다.
이날 ‘한국 상품 특별전’ 기간을 맞아 이 라면은 평소보다 37% 싼 개당 2만1900동(약 1100원)에 팔렸다. 평소보다 저렴하게 한국 라면을 사려는 인파에 볼 때마다 컵라면 갯수가 줄었다. 옆에서 빨간 옷을 입은 직원이 새 박스를 뜯어 다시 컵라면을 쌓기 바빴다.
컵라면을 사가는 사람 대부분은 베트남 현지 소비자였다. 일부 소비자는 옆에 놓인 불닭볶음면 컵라면 코너를 같이 기웃거렸다. 한 젊은 여성은 불닭볶음면 로제 컵라면을 몇차례 들었다 놨다 했다. 이 컵라면은 베트남 돈으로 4만동(약 2000원)이 넘는다. 다낭 시내 어지간한 식당에서 소고기 쌀국수 한그릇은 너끈히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라면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산 라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체 라면 시장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중국 브랜드 라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세계라면협회에 따르면 베트남은 연간 라면 소비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2021년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이 87개에 달한다. 2021년을 기점으로 이전까지 부동의 세계 1위였던 우리나라(73개)를 뛰어넘었다.
베트남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매년 10% 수준 증가세를 보일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2028년 베트남 라면 제품 시장 규모를 42억9100만달러(약 5조6096억원)로 추산했다. 5년간 베트남 라면 시장 연평균 성장률은 9.6%에 달한다.국내 시장에서 ‘먹을 입’이 줄어 고민하는 식품업계에 베트남은 단비 같은 시장이다.
국내 라면 회사 ‘빅4(농심·오뚜기·삼양·팔도)’는 일찍부터 베트남 시장에 눈독을 들였다. 지난해 베트남 수입 라면 가운데 한국산 라면이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52.3%다. 두 봉지 가운데 한 봉지가 한국산이다.
2022년 한국 라면 대(對)베트남 수출 규모 역시 1982만2000달러(약 260억원)로, 2020년(1458만달러· 약 191억원)보다 36% 급증했다.
팔도는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2006년 베트남 법인을 세웠고, 2012년 푸터성 푸닌현에 라면 공장을 설립했다. 지난해에는 베트남 남부 경제중심도시 호치민 인근에 제 2공장 설립에 들어갔다.
오뚜기는 2018년 베트남 하노이에 라면 공장을 세웠다. 진라면 같은 대표 제품을 현지에서 생산한다. 2022년 오뚜기 베트남법인 매출은 646억원으로, 2019년(277억원)보다 133% 늘었다.
삼양식품은 현지 생산 대신 ‘한국에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는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다. 국내 1위 농심(004370)은 아직 베트남 시장 매출이 지난해 1분기 기준 20억원 대다. 연간 기준으로 100억원 안팎이다.
다만 수출량이 급증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낮은 시장 점유율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베트남 전체 라면 시장에서 팔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1.2%로 전체 브랜드 가운데 10위 수준이다. 농심은 0.7%로 13위권이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들은 비싼 한국산 라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다. 반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소비층에서 국내 브랜드가 추구하는 한국적인 맛이 얼마나 오래 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한국 라면 인지도가 높아지는 추세지만, 베트남 현지 식품 트렌드를 고려한 제품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며 “해산물 맛을 기본으로 양파나 레몬, 고추 같은 새콤한 양념을 첨가한 제품처럼 현지 선호도가 높은 신제품을 선보여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