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홈텐딩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레시피를 짰습니다. 여기에 여러 재료가 빚는 ‘경쾌한 합주(合奏)’라는 테마를 부여해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지난해 열린 화요 칵테일 챔피언십 프로부문 현장. 이성하 첼시스 하이볼 바텐더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국산 증류주 화요(火堯)를 이용한 새 칵테일을 선보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41도 증류식 소주 화요41에 레몬그라스와 오미자 추출물, 복분자, 시트러스를 섞어 신선함을 강조한 창작 칵테일 ‘합주(合奏)’를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이성하 바텐더는 이 칵테일로 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최근 서울 청담동 첼시스 하이볼에서 만난 이성하 바텐더는 “와인 같이 완성된 제품은 전체 종류가 한정돼 있지만, 칵테일은 바텐더가 만들고자 하면 무한대 조합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며 “음악을 듣다가도 영감을 받고, 책을 읽다가도 ‘아 이 책은 칵테일로 이렇게 풀어내야겠다’는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불세출의 재즈 연주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가 좋아했던 술을 활용한 칵테일을 떠올린다던가, 프랭크 시나트라를 주제로 한 소설에서 받은 느낌을 칵테일로 풀어내는 식이다.

칵테일은 베이스(기주·基酒)로 어떤 술을 쓰느냐, 흔들어 만드느냐 저어서 만드느냐, 어떤 향을 더하고 빼느냐, 가니쉬(고명)로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인상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능수능란한 바텐더는 의도적으로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계속 맛과 향이 달라지는 칵테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료가 섞이는 시간차를 이용하거나, 향이 잘 퍼지는 온도까지 계산하는 치밀함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래픽=손민균

화가들이 명작을 그리려면 무수히 많은 데생(소묘) 연습부터 해야한다. 이성하 바텐더 역시 순간의 영감에서 칵테일을 끌어내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컴퓨터를 배우던 그가 바텐더 일을 시작한 때는 18년 전인 2005년. 한자리에 서 있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는 바텐더의 매력을 알게 되면서 그는 바(bar)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2005년에 디아지오코리아에서 하던 조니워커스쿨에서 6주간 바텐더 교육을 받은 다음 대학로에서 바텐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을 졸업하고 나서야 시작했으니 다른 바텐더들에 비하면 조금 늦었죠.”

‘대학에서 배운 컴퓨터 공학과 바텐더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려면 화학적인 지식은 당연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순서에 맞춰서 작업하는 과학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컴퓨터 엔지니어들은 의자에 앉아있고 바텐더는 서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코드를 만들어내는 엔지니어와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답했다.

이성하 바텐더는 2008년 돌연 일본으로 자리를 옮겼다. ‘칵테일 본고장’ 미국은 너무 멀었다. 서른 네개 이력서를 전부 손으로 쓰고, 일본 오사카 바를 찾아 다니면서 직접 돌렸다. 그 중 딱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래도 3년 정도 한국에서 바텐더를 했는데, 지금까지 제가 배웠던 것과 여기서 익힌 것이 완전히 달랐어요. 일본에서는 지거(액체의 용량을 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를 쓰지 않고, 눈으로 술 양을 보고 따르는 메키리(目切り) 문화가 있는데 기가 막히게 정확했습니다. 초밥 장인들이 손 대중 만으로 밥알 수를 똑같이 맞추는 걸 보는 기분이었어요.”

이후 눈으로 오차 없이 따를 만큼 실력을 쌓을 만큼 자발적인 공부와 연습을 거친 결과 그는 2013년 가장 권위 있는 칵테일 경연대회 ‘볼스 어라운드 더 월드’ 아시아 퍼시픽 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2년 뒤 2015년에는 7년 전만 하더라도 ‘너무 멀어 보여서 가지 못했던’ 칵테일 본고장 미국에서 같은 대회 1위로 올라섰다. 세계 3대 칵테일 경연대회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국내 우승, 미국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바텐더는 여전히 그 뿐이다.

이성하 바텐더는 그 때를 회상하면서 “그 무렵에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빠르게 주목을 받았는데, 그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배수진을 치고 쉴 새 없이 기술을 익혔다”며 “월급 절반은 다른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는 데 쓰고, 나머지 절반에서 30만원씩 관련 책을 사보면서 지식을 채워 넣었다”고 말했다.

정점에 올랐을 때, 그는 미국을 떠나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 아직 국내에 하이볼 문화가 알려지기 전, 그는 청담동에 ‘첼시스 하이볼’을 열었다. 첼시스 하이볼은 칵테일만큼이나 음식을 강조한 다이닝 바(dining bar)다.

칵테일 바 대부분은 주인공인 칵테일 메뉴를 먼저 짜고 여기 맞춰 곁들이는 음식 메뉴를 만든다. 그러나 첼시스 하이볼은 음식 메뉴를 먼저 구성한 다음, 이성하 바텐더가 음식에 맞춰 칵테일을 내놨다.

그는 술과 음료를 섞은 뒤 퍼포먼스를 가미하는 고전적인 바텐더 역할 대신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음식에 집중해야 바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칵테일은 1920년 미국에 금주령이 내려진 뒤 형편없는 밀주가 유통되자 술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 허브나 시럽을 섞어 만든 것이 시초다. 이 ‘섞는’ 과정을 강조하기 위해 바텐더들은 쉐이커를 아래 위로 흔들거나 이리저리 던져가면서 화려한 모습을 강조한다.

이성하 바텐더는 “눈길을 사로잡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술 맛을 해치지 않게 큰 얼음을 둥글게 둘러 깎는 기술, 탄산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잔 벽면을 이용해 술을 따르는 기본기를 잊어버리거나 놓치기 마련”이라며 “쉬워 보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고 이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천가지가 넘는 칵테일을 마셔봤을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을 꼽아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진앤토닉과 잭 콕”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두 칵테일은 칵테일의 고전이자 기본이다. 진앤토닉은 진에 토닉을 섞어 만든다. 레시피가 간단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잭 콕도 마찬가지다. 미국 위스키 잭 다니엘에 콜라를 섞은 간단한 칵테일이다. 여러 창의적인 칵테일로 수차례 세계 대회 한국과 미국 우승자 자리에 오른 챔피언의 답변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했다.

“이 두 칵테일은 쉬워 보이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가장 어려운 칵테일입니다. 진앤토닉이나 잭콕은 탄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균형감을 잘 맞춰야 합니다. 얼음 위로 탄산을 바로 부으면 밍숭맹숭한 칵테일이 되기 쉽죠. 진이나 잭다니엘을 조금이라도 더 넣으면 너무 강렬해서 청량감이 사라집니다. 사소한 부분에서 실력이 드러나니 항상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칵테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