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싱가포르 서쪽 주택가에 인접한 대형 쇼핑몰 주롱포인트. 이곳 1층에 자리한 편의점 이마트24는 점심시간 떡볶이와 라면, 김밥 등 K푸드를 즐기는 현지인들로 붐볐다. 매장 내 라면 기계와 떡볶이를 조리하는 전자레인지 앞으로는 줄이 늘어섰다.
라면 기계 앞에서 만난 조셉 추앙씨는 “한국 라면을 직접 끓여 먹는 기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았다가 K푸드 팬이 돼버렸다”면서 “떡볶이, 컵밥, 도시락까지 이곳에서 파는 것은 거의 다 먹어봤다. 요즘엔 진열대의 라면을 종류별로 맛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004170)그룹 편의점 이마트24가 싱가포르에 ‘K푸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주롱포인트점에만 하루 평균 700~800명이 찾아 라면을 끓이고, 떡볶이를 사 먹는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 1·2호점을 개점, 국내 편의점 최초로 싱가포르에 진출한 지 약 반년만이다.
이마트24는 내달 3호점 개점도 예정했다. 1·2호점 개점 후 5개월여간 운영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면서다. 이마트24 관계자는 “구체적인 매출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개점 당시 잡은 목표 매출액의 2배 이상 실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그동안 국내 유통가가 외면한 국가였다. 마이스(MICE) 산업 요충지이자 동남아의 금융 허브로도 불리지만, 인구가 약 545만 명으로 적어서다. 서울과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절반 수준이다. 이마트24의 해외 진출 첫 번째 국가 역시 싱가포르는 아니었다.
이마트24가 싱가포르 현지 식음료(F&B) 기업 페이숑과 ‘이마트24 싱가포르 PTE’를 설립, 편의점을 아예 K푸드 특화 F&B 매장으로 꾸린 게 통했다. 인구는 적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8만 달러(약 1억원, 2022년 기준)로 높아 외식 산업이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발달했다는 점을 노렸다.
또 싱가포르는 식사를 외부에서 해결, 편의점에서의 식품 구매 수요가 적다는 점을 겨냥했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2022 싱가포르 요식업 현황’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제과점 매장 수는 189곳으로 편의점 657곳보다 적지만, 매출 규모는 1억2320만 싱가포르 달러(약 1178억원)로 비슷했다.
해외 진출 1번지였던 말레이시아에서의 K푸드 강화 전략이 통하지 않은 것도 이마트의 싱가포르 진출을 이끌었다. 해외 진출 후발주자였던 이마트24는 말레이시아에서 K푸드를 차별화 전략으로 택했지만, 가격이 장벽이 됐다. 작년 기준 말레이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약 1280만원) 수준이다.
이날 찾은 이마트24 주롱포인트점은 편의점이라기보다 K푸드 카페에 가까웠다. 매장 절반이 식사 공간이었다. 매장 입구에는 치킨과 김말이, 핫도그 등이 전시됐다. 계산대는 음식 주문 카운터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다. 컵밥 가격이 우리 돈 5000원을 넘었지만, 주문이 계속됐다.
매장 내부에선 라면 기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종이 용기에 면과 스프를 넣고 물을 받아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게 한 이른바 ‘한강 라면 기계’가 싱가포르 이마트24에선 매장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이날 라면 기계로는 오후 내내 라면을 끓이는 사람들이 몰렸다.
라면 기계 옆으로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됐다. 매장 내에 매대를 촘촘히 비치하고, 매대 가득 상품을 전시·판매하는 일반적인 편의점의 모양과는 달랐다. 테이블에는 떡볶이와 라면, 김밥, 그리고 주문 조리하는 김치찌개까지 다양한 한식이 올라 있었다.
제프리 류 이마트24 주롱포인트점 매니저는 “이마트24는 인접한 편의점과 인근 K마트와 경쟁하는 동시에 쇼핑몰에 자리한 음식점과도 경쟁한다”면서 “매장에서 떡볶이와 컵밥을 만들어 팔고 셰프가 오전에 만든 도시락 그리고 부대찌개, 김치찌개도 판매한다”고 말했다.
이마트24의 인기 요인으로는 ‘진짜 한국의 맛’이 꼽힌다. 끓인 라면의 맛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라면 기계를 설치했고, 매장에서 조리해 판매하는 떡볶이의 떡과 양념은 모두 국내에서 직접 조달한다. 컵밥, 닭강정, 핫도그 등의 조리 방법은 이마트24에서 직접 개발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대부분 식재료를 현지에서 조달하되 한국에서 판매하는 음식의 맛을 최대한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과자, 음료 등 상품도 판매하지만, 싱가포르에서의 핵심 품목은 간편 먹거리로 매장 전체 매출의 57%가 K푸드”라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유명인(인플루언서) 마케팅도 싱가포르에서의 이마트24 인기를 이끌었다. 이마트24는 싱가포르 인기 유튜브 채널 ‘더스마트로컬’ 등과 손잡고 이마트24에서의 K푸드 ‘먹방’ ‘쿡방’ 등을 진행, 현지 젊은 층이 먼저 찾는 매장으로 만들었다.
류 매니저는 “현재 싱가포르에선 라면을 직접 끓이고 치즈가 들어간 떡볶이를 먹는 게 젊은 층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으로 떠올랐다”면서 “하루 평균 700~800명이 찾고, 인근 학교가 방학을 하기 전엔 학생들의 방문으로 하루 1000명도 넘게 이곳 매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마트24 싱가포르 2호점인 넥스몰점에서 만난 니타 영씨는 “한국 드라마를 즐겨 한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유튜브에서 이마트24 소개를 보고 찾았다”면서 “오늘은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다음엔 틱톡에서 본 아미스튜(부대찌개)에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 편의점의 대표 상품으로 꼽히는 도시락과 반찬류의 판매는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K푸드 특화 매장으로 구성했지만, 상품 수가 부족한 것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라면 매대를 제외하면 과자 등 매대의 한 칸이 상품 하나로만 채워진 곳이 많았다.
이마트24는 매장을 꾸준히 늘려 매장 내 상품 수도 확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1·2호점 성과에 힘입어 이미 싱가포르 남부 퀸즈타운역 인근에 3호점 개점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호점 개점을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10개점 개점 목표도 세웠다.
이마트24 관계자는 “매장이 늘면 유통하는 상품 가짓수도 늘려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인구 1059명당 편의점이 1개꼴인 우리나라와 달리 싱가포르는 인구당 편의점 수가 8300명당 1개 수준으로 적어 매장을 늘릴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