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고속터미널역과 왕십리역 지하상가 등에 쇼핑몰을 운영하는 ‘엔터식스(Enter-6)’가 연간 세 차례씩 주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돈을 걷어온 사실이 드러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같은 달인 회장과 사장의 생일에 한 번, 또 설날·추석에 각각 한 번씩 수금했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 임원 A씨는 직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사장님 생신 준비합시다”라는 글을 올리며 계좌번호를 공유했다. 이어 돈을 낸 직원들의 지점과 직책 및 직위, 이름 등을 표시하고 제출한 금액을 표에 정리해 단체방에 공개했다.

이처럼 모인 ‘사장님 생신 선물 비용’이라는 목적의 비용은 100만원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금 행위는 1년에 세 차례씩 이어졌다. 생일뿐만 아니라 명절에도 이같은 일은 반복됐다. 최소 4만원의 금액부터 최대 30만원까지 돈을 걷어 회장, 사장에게 육류 세트 등을 명절 선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터식스의 한 관계자는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고 돈을 걷었고, 누구에게 얼마를 내라는 식으로 계좌번호를 공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회사에 직원이 모자라 대리급에게 팀장 직책을 주고 수금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엔터식스는 현재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역)점을 비롯해 왕십리역점, 강변점, 상봉점, 파크에비뉴 한양대점, 천호역점, 안양역점 등 수도권에서 7개의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다. 1994년 국내 최초 패션 아웃렛 몰인 ‘DUMP’로 시작한 이 기업은 2004년부터 엔터식스로 상호를 바꿨다.

그래픽=손민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엔터식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452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은 4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77억원)대비 적자 폭을 크게 줄였다. 당기순손실도 57억원으로 전년(107억원)보다 절반가량 감소했다.

다만 회사가 적자를 줄이고 외형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임직원들이 혹사당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엔터식스의 한 직원은 “일부 직원의 경우 윗사람의 눈치를 봐 주말이나 월요일에는 휴가를 내기 어렵고, 쉬는 날이나 주말에도 문자나 카톡으로 보고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직원은 “사장이 오면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군대식 수직 문화였다”고 말했다.

엔터식스 측은 “일부 지점에서 (임원진에게) 잘 보이고 싶다든지 해서 그런 일이 있었을 수 있는데, 직원들에게 수금을 강요한 건지 확인할 수는 없다”라고 밝혔다.

임원 A씨도 “사장님 생일 준비 같은 경우 강요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전달한 것”이라며 “직종상 스케줄에 제약이 있어 연차 사용에 일부 제한이 있지만 자유롭게 쓰는 편”이라고 해명했다.

엔터식스 파크에비뉴 한양대점 내부 전경. /엔터식스 홈페이지

앞서 프랭크버거에서도 사장 회갑연에 직원들에게 돈을 강제수금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프랭크버거는 최근 대표이사 A씨의 회갑연을 앞두고 임원의 경우 7만원, 부장과 차장의 경우 5만원, 과장·대리·사원의 경우 3만원의 경조사금을 수금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직장 내 갑질이 자주 발생하는 원인으로 폐쇄된 기업 환경과 권력적 위계 구조 등을 꼽았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직원들이 잘못된 관행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해당 경우들은 상급자가 권력을 활용해서 직원들에게 선의를 포장한 ‘갈취’ 행위를 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특히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의 경우 내부자들이 잘못된 관행을 잘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 벌어진 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장종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직원들에게 사용자(회장, 사장 등)를 위한 비용을 걷는 문화를 만들고, 특정 대상에게 계속 연차를 제한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여지가 높다”며 “괴롭힘의 주체가 사용자라면, 회사에 조사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노동청에 의견을 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