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전자상거래 업체 11번가가 개발자를 포함한 직원 임금을 평균 4%대 인상하기로 했다. 작년 평균 인상률(9.5%)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년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앞두고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적자 탈출 방안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1번가 노사는 지난 5월 이같은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11번가 관계자는 “작년에 높은 수준으로 임금이 올랐고 올해도 여러 상황을 고려해 임금 협상이 체결됐다”며 “임금 외에도 매달 셋째 금요일에 쉬는 해피 프라이데이를 도입하는 등 직원 복지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11번가가 상장을 앞두고 수익성 개선에 나서며 직원 임금 인상 폭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11번가는 2018년 SK플래닛에서 분사하며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사모펀드 H&Q코리아 등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고 5년 내 기업공개(IPO)를 약속했다.

당시 11번가의 기업 가치는 2조7000억원이었고 상장 시 4조~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증시가 부진하고 투자 심리가 위축되며 기업 가치를 기대만큼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게 투자 업계의 시각이다.

11번가가 지난 4월 대신·미래에셋증권 등 국내외 증권사 10여 곳에 상장을 위한 입찰 제안 요청서(RFP)를 보냈으나 아직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1번가 관계자는 “신중하게 증시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11번가는 투자를 유치하며 상장을 통해 최소 3.5%의 연간 내부 수익률(IRR)을 보장하거나 상장 실패 시 드래그 얼롱(동반 매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약 조건을 걸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드래그 얼롱은 소수 주주가 대주주 지분까지 함께 팔며 투자금을 쉽게 회수하도록 보장하는 조항이다. 11번가가 상장하지 않으면 SK스퀘어(당시 SK텔레콤) 지분 80%까지 함께 팔리거나 SK그룹 계열사가 투자자 지분을 되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11번가는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수익성을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아마존 등 해외 직구와 직매입 확대, 슈팅(익일) 배송 등을 강화하는 이유다.

하형일 11번가 사장은 지난 5월 타운홀 미팅에서 “성장을 위해 모든 전력과 투자를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11번가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다. 당기순손실은 265억원이다. 회사 측은 “코로나 엔데믹(풍토병화)에 대응하느라 영업 비용이 들었다”며 “작년 4분기보다 영업 손실이 23% 줄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