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 후미진 골목,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한 건물 앞이 ‘인증샷’을 찍으려는 젊은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정육점을 연상시키는 붉은 조명이 새어 나오는 이 건물은 지난 2월 침대 회사 시몬스가 세운 ‘그로서리 스토어(Grocery store·식료품점)’다.
대지 면적 500㎡(약 150평) 규모의 3층짜리 단독 주택을 개조한 이 건물 1층에선 우유갑에 든 쌀, 삼겹살 모양의 수세미, 햄버거 상자에 든 메모지를 판다. 2층에선 버거과 수제 맥주를 파는 버거샵과 농구코트가, 3층에선 강렬한 색채의 미디어 아트 전시가 손님을 맞는다.
침대 회사가 만든 식료품점이지만, 침대도 식료품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문을 연 지 두 달도 안 돼 2만5000여 명이 방문했고, 평균 5000원대에 판매하는 굿즈(기념품)는 현재까지 총 1억2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시몬스가 이런 팝업 매장을 연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20년 브랜드 출범 150주년을 기념해 성동구 성수동에 10평짜리 ‘하드웨어 스토어’를 열었고, 지난해엔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 ‘해운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열었다. 이번 청담동 매장은 종전 규모를 2배 이상 키워 약 1년간 운영할 예정이다.
조선비즈는 3월 24일 서울 청담동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에서 팝업 공간을 총괄한 김성준 시몬스 전략기획부문 상무를 만났다.
침대 회사가 침대 없는 매장을 만들고 쌀과 메모지, 농구공 등 독특한 물건을 파는 이유가 궁금해서다.
김 상무는 “시몬스만의 문화와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이런 공간을 꾸렸다”라고 설명했다.
김 상무는 이탈리아 남성복 회사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뉴욕 쇼룸에서 홀세일(도매) 상품기획자로 근무했다. 한국 제냐에서 리테일 플래너와 바이어 업무를 겸직했고, CJ오쇼핑에서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하다 2015년 시몬스에 합류해 브랜드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은 김 상무와의 일문일답.
‘침대 없는 광고’와 팝업스토어(임시매장)로 이목을 끌었다. 침대 회사가 침대가 아닌 다른 것에 한 눈을 파는 이유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와의 접점(Attachment)을 늘리기 위해서다. 침대 소비 주기는 5~7년으로 길다. 결혼이나 이사 등 침대를 사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시몬스 침대’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타벅스나 애플처럼 그 브랜드이기 때문에 사게 하는 것, 즉 우리의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경험할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있다.”
팝업스토어는 이번이 세 번째다. 역시 침대는 없다. 타깃은 누구이고, 어떤 목적을 갖고 이 매장을 기획했나.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가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5000원짜리 굿즈를 사며 재미를 느끼고, 맛있는 버거를 먹으며 시몬스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식이다.
이는 소셜 트렌드를 고려한 기획이기도 하다. 침대, 패션, 숙면 등의 보편화된 키워드로는 소셜미디어상에서 키워드를 선점하기 어렵다.
하지만 ‘호텔침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라면 가능하다. 이를 위해 5성급 호텔에 시몬스 침대를 넣고, 재밌는 팝업스토어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다가서고 그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시몬스그로서리스토어’를 검색하면 1만7000여 건 이상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굿즈도 화제를 모은다.
“굿즈의 경우 시몬스를 계속 소비하게 하기 위해 기획됐다. 거창한 의미를 담기 보다는 재미있는 제품을 만든다. MZ세대로 구성된 시몬스 스튜디오 직원들이 만드는데, 시몬스 로고만 쓰게 하고 어떤 제품이든 자유롭게 만들게 한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삼겹살 수세미의 경우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히트를 쳤다.
굿즈 수입도 꽤 쏠쏠하다. 지난해 부산에선 3개월 동안 1억5000만원의 매출을 냈고, 지난 2월 진행한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부스에서는 5일 동안 8000만원의 매출을 거뒀다.
의류 업계에 종사하다 침대 회사로 이직했다. 그래서인지 시몬스 광고는 마치 패션 광고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원래 시몬스 안정호 대표가 브랜딩에 관심이 많아 직접 광고를 디렉팅해 왔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광고 문구도 안 대표가 만든 것이다. 내가 한 일은 브랜드를 리패키징한 것 뿐이다.
침대 회사의 광고를 보면 대부분은 회사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매트리스의 성능이나 숙면을 강조하는 식이다. 과연 고객에게 그런 정보가 필요할까?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의 성능이나 정보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파악한다. 그렇다면 광고와 매장에서 보여줄 것은 제품의 이미지와 룩(Look·스타일)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마케팅과 유통에 명품 브랜드의 문법을 적용해 시몬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했다.”
슬로건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다.
“원래 시몬스의 매트리스 기술력인 ‘포켓 스프링’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문구였지만, 지금은 ‘정신적 편안함’이라는 확장된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1월에 공개한 ‘오들리 새티스파잉 비디오(Oddly Satisfying Video)’의 경우 1960년대 히피 운동이 강조한 ‘멘탈 헬스(Mental Health·정신 건강)’에서 영감 받아 무의식적인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 영상이다.
가만히 멍 때리며 쉴 수 있도록 반복되는 영상을 만들어 배포했는데, 유튜브에 공개한 지 한 달도 안 돼 조회 수 2000만 회를 넘겼다. TV 광고는 2월 첫째 주 광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유통 방식도 바꿨는데?
“그동안은 본사가 대리점에 침대를 공급하면 인테리어나 판매는 대리점주가 알아서 하는 방식으로 침대를 팔았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에게 일관된 서비스나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웠다. 이에 4년 전부터 연간 300억원을 들여 ‘시몬스 맨션’이라는 위탁 대리점 방식을 적용했고, 작년 9월부로 사입제로 운영하던 기업 간 거래(B2B) 기반의 대리점 운영을 종료했다.
시몬스 맨션은 본사가 임대료·관리비·인테리어 비용·진열 제품 등 매장 운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100% 지원하고, 시몬스 맨션 점주는 판매에 대한 수수료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36개월 무이자 할부로 판매하는 시몬스페이도 운영한다.
이런 노력으로 점당 이익이 증가했다. 2018년 250여 개였던 매장 수가 지난해 140여 개로 줄었지만, 핵심 상권에 매장을 열고 소비자 접점을 최적화한 결과 이 기간 매출은 1000억원가량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몬스의 매출액은 2018년 1972억원, 2020년 2715억원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시몬스 매출은 약 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가구 업계가 특수를 누렸지만,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로 전환되면 거품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럴 때일수록 빛을 보는 브랜드는 팬덤이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줄을 세우는 샤넬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침대=시몬스’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다양한 브랜딩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최근에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전지예 선수의 후원을 시작했고, 올여름엔 ‘멘탈 헬스’를 주제로 DJ와 함께 음원을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