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는 이마트 답게, 백화점은 백화점 스럽게.’

이달 15일 확 바뀐 신세계(004170)그룹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의 신세계백화점 모바일 화면에선 이런 방향성이 드러난다. 이전 화면에 비해 이미지와 글자가 줄고 여백이 늘었다.

상단 기획전 광고에선 ‘50% 할인’ 같은 글자가 사라졌고 화면이 복잡해 보일 수 있는 이미지 수는 확 줄었다. 대신 제품을 착용한 이미지를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코너를 메인에 배치했다. 지금 어떤 제품이 저렴한지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마트 앱 화면과 딴판이다.

지난 15일 새롭게 개편된 SSG닷컴 내 신세계백화점 모바일 화면. / SSG닷컴 캡처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 디지털 전략을 통해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그룹 다른 계열사와 디자인 통일성을 유지해왔던 SSG닷컴 내 백화점 화면을 회사 정체성에 맞게 바꾸고, 자체 앱은 기능을 추가하거나 아예 새로운 앱을 별도 출시하는 등 독자 행보가 두드러진다. 패션·뷰티는 오빠인 정용진 부회장이 추구하는 종합몰 형태의 이커머스와 달리 버티컬 플랫폼(전문몰)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지금까지 신세계그룹의 디지털 전략은 정용진 부회장 주도로 이마트(139480)·SSG닷컴이 실행해왔다. 2019년 취임한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는 마트 점포를 온라인 물류를 위한 배송기지(PP센터)로 만들고 신생 이커머스인 SSG닷컴을 안착시켰다. 올해 네이버(NAVER(035420))와 지분 교환을 하고 이베이코리아, W컨셉을 약 3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굵직한 투자 건을 진행할 때도 강 대표가 중심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마트를 지원 사격하는 역할에 머물렀던 신세계백화점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커머스 기능이 없어 SSG닷컴에 연동되지 않는 신세계백화점 자체 앱 콘텐츠를 강화했다. 지난 4월 앱을 통해 전자책을 대여해주는 신백서재를 선보인 데 이어 6월 백화점 입점 식당 리뷰를 공유할 수 있는 마이룸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같은달 지니뮤직과 손잡고 월별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고 온택트 콘서트도 했다. 신규 고객보다 기존 고객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서다.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 / 신세계그룹 제공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은 8월 아마존웹서비스와 손잡고 자사 앱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에 정품 인증 디지털 보증서를 도입했다. 이 보증서에는 제품 정보와 구매 이력, 소유권 등의 정보가 내장돼 있고 위·변조가 불가하다. 100% 정품임이 보장되지 않는 병행수입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9월에는 자주 앱을 개편, 라이브 방송을 도입했고 10월에는 한정판 전문 플랫폼 DU(Design United), 12월에는 뷰티 전문 플랫폼 에스아이뷰티(S.I.BEAUTY)를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의 플랫폼 전략은 ‘세분화’와 ‘커뮤니티’로 압축된다. 모든 상품을 한 곳에서 판매하는 게 아니라 카테고리별로 플랫폼을 따로 만들어 타깃 고객층을 세분화 했다. 모든 플랫폼에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 기능을 추가한 것도 특징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에스아이뷰티를 ‘뷰티 플랫폼’이라고 소개했다. 앱에 커뮤니티 기능을 넣었는데, 회원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처럼 사진과 글을 공유할 수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활동 점수를 매겨 포인트를 지급한다. 화장품은 다른 품목 대비 이용자들의 후기와 리뷰가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이달 초 출시한 에스아이뷰티. 커뮤니티 기능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정유경 총괄사장이 백화점 부문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정 부회장이 그리는 마트 기반의 이커머스 사업모델이 윤곽을 드러내면서다.

백화점 부문은 SSG닷컴을 명품, 패션, 화장품을 공급하는 채널로 활용하고 있지만 백화점의 색채를 잘 살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가 강점을 갖는 식품과 달리 명품, 패션, 화장품은 전문몰이 강세다. 명품은 스타트업인 트렌비·머스트잇·발란의 월 거래액이 1500억원에 육박했다. 화장품은 CJ올리브영이 독주하고 있다.

백화점 부문이 전문몰에 집중하는 건 SSG닷컴 투자자들과 맺은 계약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SG닷컴이 지난 2019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과 맺은 풋백옵션(환매청구권) 행사 요건에 경업(競業·영업상 경쟁) 금지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SG닷컴의 경쟁상대가 되는 이커머스 플랫폼을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내년 SSG닷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투자자들이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하면 새로운 플랫폼 전략을 짜기가 수월해진다. SSG닷컴은 지난 10월 말 미래에셋증권과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한 뒤 기업공개(IPO) 절차에 돌입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늦어도 내년 6월에는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뒤 이르면 8~9월에 상장할 전망이다.

유통업계에선 신세계그룹 전략실 내에 최근 온라인 태스크포스(TF)가 신설된 점에 주목한다. 신세계그룹은 김혜경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를 팀장(상무)으로 영입했다. 이마트·SSG닷컴을 넘어 그룹 전체의 온라인 전략을 짤 조직을 새로 만든 것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마트에 비해 백화점은 디지털 전환 속도가 늦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정 총괄사장이 당분간 이마트의 약점인 패션·뷰티 전문성을 살린 전문몰로 시너지를 추구하다 궁극적으로는 독자 플랫폼 전략을 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