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챗GPT
3년 차 직장인 김모(30)씨는 그동안 모은 목돈을 펀드에 투자해 보기로 했다. 분산 투자를 강조하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김씨는 막막했다. 채권형 펀드, 주식형 펀드, 신흥국 펀드 등에 얼마만큼 비중을 두고 투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인의 추천으로 인공지능(AI)이 자산 배분을 조언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알게 됐다. 서비스 가입 후 투자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질문에 답한 뒤 투자 금액을 입력하자 로봇이 모든 걸 알아서 투자했다. 김씨처럼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하고자 하는 투자자를 위해 궁금증을 풀어봤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AI가 알고리즘에 따라 주식, 채권,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군에 배분해 투자하는 기술이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국내에 들어온 건 2016년이다. 당시에는 실험적인 수준이었지만 현재 로보어드바이저를 사용하지 않는 금융사는 찾기 힘들 정도다.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계약자 수는 총 31만7434명으로 지난 2017년(3만8707명)보다 10배 늘었다. 운용금액 역시 2017년 4219억원에서 지난달 8784억원으로 2배 가까이 불었다.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자산관리와 투자 일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주요 업체는 파운트·핀트·에임·콴텍 등이 대표적이며 스타트업까지 합하면 모두 2000여곳이 있다. 이 업체들은 로보어드바이저를 기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데, 방식은 크게 투자 자문과 투자 일임으로 나뉜다. 이름 그대로 투자 자문은 고객에게 투자 상품을 추천해 주고 고객이 직접 투자를 실행하는 방식이다. 투자 일임은 AI 알고리즘이 투자 상품의 추천은 물론 투자 실행과 운용까지 맡아 주는 방식을 말한다. 둘 중 인기 있는 건 AI가 모든 걸 알아서 해주는 일임형이다. 실제 지난달 기준 일임형 가입자 수는 15만명에 달했지만 자문형 가입자 수는 789명에 불과했다.

◇ 나만의 AI PB…샤프지수·최대손실률 확인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은행, 증권사, 핀테크사의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가입할 수 있다. 회사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서비스에 가입 후 본인의 투자 성향을 입력하면 상품을 추천한다. 로보어드바이저 역시 자신의 판단이 틀리면 투자 궤도를 수정한다. 시장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 세부 종목을 리밸런싱(재조정) 하는 식이다. 재조정 주기는 로보어드바이저별로 다르다. 부자가 아니어도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로보어드바이저의 강점이다. 기존 PB 서비스를 받으려면 최소 수억원의 금융자산이 있어야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의 최소 가입 금액은 10만~300만원 정도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고객에게 조언하고 돈을 굴리려면 먼저 한국거래소의 정보기술(IT) 자회사 코스콤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코스콤의 심사를 통과해 서비스 중인 로보어드바이저는 415개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자는 코스콤에서 운영하는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수익 성과 및 각종 지표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시 몇 가지 고려사항도 알아보자. 우선 샤프지수(위험조정 수익률)라는 지표를 참조할 수 있다. 이 지수는 단순 수익률이 아닌 위험 대비 수익률을 나타내는 수치다. 가령 A펀드와 B펀드의 샤프지수가 각각 1, 3이라면 같은 리스크의 상품에 투자했을 때 B펀드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즉 샤프지수가 높을수록 더 좋은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손실률도 꼭 체크해 선택하시기를 추천한다. 돈을 벌 때 아무리 잘 벌어도 손실 역시 크다면 보수적인 투자 성향의 투자자에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를 통과한 415개 펀드를 분석해 보면 최대손실률은 -0.38%에서 -51.74%까지 다양하다.

그래픽=정서희

◇ 최대 수익률 연 60%…하락장에 강해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위험중립형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은 1.59%다. 숫자만 보면 로보어드바이저가 벤치마크하는 코스피200지수 수익률 2.51%를 밑돈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적극투자형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은 2.08%, 안정추구형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은 1.17%로 역시 미흡했다. 다만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1.86%,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7.18%를 기록하며 전체적인 주식시장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코스콤 테스트베드를 통과한 로보어드바이저의 지난 1년간 수익률을 살펴보면 가장 수익률이 높은 상품은 엠엘투자자문의 ‘메타로고스 IPO with 매크로핀(주식)’으로 수익률이 58.59%에 달한다. 이어 콴텍투자일임의 ‘콴텍 퀄리티 Focus 국내 주식 1호(주식)’가 35.12%, ‘콴텍 퀄리티 Focus 국내 주식 2호(주식)’가 30.25% 등을 기록했다.

현재 로보어드바이저가 수익률이 낮다고 무시하면 오산이다. 금융업계에선 로보어드바이저는 ‘공격보다 수비에 강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람은 위기 때나 변동성이 큰 장에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도 많지만 AI는 다르다. 인간과 달리 ‘하락장에도 쫄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로보어드바이저의 AI는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생성형 AI와 달리 분석형 AI를 활용한다. 분석형 AI는 수많은 알고리즘, 방대한 빅데이터 등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론을 낸다. 이 때문에 갑자기 급등하는 업종이나 주식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즉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안정적 수익을 낼 장기 투자에 적합한 투자 방식이라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주식시장이 크게 침체했던 2022년 당시 코스피200 지수 상승률은 -26.15%,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 상승률은 각각 -24.89%와 -34.30%를 기록했다. 반면 위험중립형 로보어드바이저 평균 수익률은 -8.95%였다. 안정추구형은 -6.09%, 적극투자형은 -11.91%로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로보어드바이저는 연초 대비 8.99%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12.94%, -16.4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연말부터는 4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그간 퇴직연금의 경우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 자문만 가능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는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퇴직연금도 로보어드바이저에 일임할 수 있게 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적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 시장은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실적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 영역 등이다.

코스콤이 업체들의 신청을 받아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퇴직연금 AI 알고리즘의 검증 심사(테스트베드 심사) 결과 총 206종의 AI 알고리즘이 심사를 통과했다. 이들이 오는 9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신청하고 이를 통과하면 올해 12월 11일 이후부터 AI 퇴직연금 상품을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