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뉴스1

인구 감소 등의 영향으로 지방병원의 존립이 흔들리고 있다. 지방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들이 잇달아 회생법원을 찾아 경영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료법인들은 회생마저 실패하고 파산에 이르기도 하는데,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파산1부는 최근 의료법인 A재단에 포괄적 금지 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 명령은 채무자 회생과 파산에 관한 법률상 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전 회생채권자나 회생담보권자들이 채무자 재산에 대해 가압류 등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절차다.

A재단은 경기도 양주에서 내과와 정형외과 등 4과목을 진료하는 1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 개원한 후 지역거점 병원으로 자리매김했지만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억~3억원가량 영업이익을 내오다 지난해 약 7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 병원은 한 때 경영상 문제로 업무가 마비됐다가 최근 재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에서도 복수의 의료법인이 회생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 법인은 회생계획안까지 제출했으나 관계인집회에서 부결돼 회생절차가 폐지됐고, 또 다른 법인은 특별조사기일이 잡힌 상태다. 수도권뿐 아니라 광역시 소재 병원도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그러나 회생법원을 찾는 법인이 모두 경영 정상화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을 계속 운영하더라도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회생 졸업'에 도달하지 못 한다.

최근 수원회생법원 2부는 의료법인 B재단에 대한 회생절차를 폐지했다. 재판부는 "채무자의 사업을 청산할 때 가치가 채무자의 사업을 계속할 때의 가치보다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회생절차를 폐지한다"고 판시했다.

B재단은 경기도 시흥에서 60병상 규모의 한방병원을 운영해왔다. 2006년 문을 열었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약 55억을 매출을 올렸지만 2021년 25억800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 2017~2019년 3억원가량 영업이익을 냈으나 2021년에 7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재판부는 B재단이 병원 경영을 지속하더라도 정상 궤도로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인 실사 결과 회생절차에 이르게 된 사정이나 재무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봤을 때 경영을 지속할 능력이나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어린이 병원 문 앞에 휴진 문구가 붙어 있다./뉴스1

의료계에서는 병원이 '웨딩홀'과 유사한 수순을 밟는다고 보고 있다. 신혼부부가 시설이 낙후된 웨딩홀 대신 가격대가 높더라도 분위기와 고급 시설을 갖춘 웨딩홀을 선택하듯 환자들도 첨단 의료시설과 '명의'가 있는 병원을 찾으며, 그 과정에서 시설이 낙후된 지방병원들은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종사자는 "인구가 줄어드는 데다 교통 발달로 서울 대학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지방병원의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도 의사 등 의료인의 인건비가 낮은 편이 아닌데 환자가 줄다 보니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시설 재투자도 힘든 상황"이라며 "지방병원이 재정과 시설 악화로 환자 발길이 끊기는 사이 서울 대학병원은 예약이 꽉 차 진료 한번 받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의료법인 회생·파산이 많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73년 도입된 의료법인 제도를 현 상황에 맞게끔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이 2021년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이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의료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키면서 어려운 법인에 퇴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