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되면서 채권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연 2.7%였는데, 최근 4%대에 안착한 모양새다.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채권 대차 거래 잔고도 사상 최대치를 연일 경신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채권 금리 상승과 가격 하락에 무게를 두고 있단 뜻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전쟁·고유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담 등으로 당분간 채권 시장의 약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치솟는 국고채 금리
최근 국고채 금리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 13일 연 4.044%를 기록했다.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연 2.7~2.8%에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월평균 3.248%를 기록한 이후 상승세를 타다가 결국 4%대까지 올라온 셈이다. 마찬가지로 3년물과 30년물도 지난 13일 금리가 각각 3.635%, 3.968%까지 치솟는 등 채권 금리 전반에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단 평가다. 채권은 금리가 높을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구조다. 채권 가격이 최근 들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단 얘기다.
채권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대차 거래 잔고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대차 거래 잔고는 223조1066억원을 기록했다. 대차 거래 잔고는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136조9140억원 수준이었는데, 올해 들어 사상 처음 200조원을 넘어선 이후 잇따라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추세다. 채권 가격 하락을 내다보고 공매도에 나서는 돈이 역대급 수준이란 것이다.
◇전쟁과 고유가로 인플레이션 우려 재점화
전문가들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의 장기화와 고유가발(發) 인플레이션 우려를 주된 배경으로 지목한다. 더구나 최근 국내 1분기 GDP 성장률(1.7%)이 시장 예상치(0.9%)를 크게 웃돈 점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김영실 iM증권 연구원은 "1분기 GDP 서프라이즈 이후 한국은행의 정책 초점은 성장 방어보다 물가 안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5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성장률·물가 전망이 동반 상향될 경우 사실상 하반기 금리 인상 신호로 7월 인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시장에서도 이미 금리 인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원은 "기준금리와 국고채 3년물 사이의 차이가 1.0%포인트에 달하는 상황(그만큼 국고채 금리가 많이 올랐다는 뜻)"이라며 "이는 금리 인상 가능성과 물가 전망 상향, 부동산 및 금융 안정 리스크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은 지난 12일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발표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3.8% 올라 지난해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어 지난 13일 공개한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대비 6.0% 상승해 시장 예상치(4.9%)를 크게 웃돌았다. 2022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 폭이다. 이에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4.49%, 30년물 금리는 장중 5.05%까지 치솟으면서 지난해 7월 이후 최고 수준에 달했다. 영국의 경우에도 인플레이션 우려에 키어 스타머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이 겹쳐지며 이날 국채 10년물 금리가 장중 5.13%까지 올랐다.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채권 시장 당분간 약세 지속"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채권 시장의 약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채권은 안전 자산으로서의 입지가 약화하고 있다"며 "국고채 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인상 폭이 확인되기 전까지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국고채 금리는 회사채와 은행 채권 등의 기준 역할을 하는 만큼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도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채 금리가 뛰면 정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건 물론 회사채나 대출 금리도 자극을 받는다"며 "금리가 올라 차입 비용이 높아지면 기업 활동과 가계 소비가 위축되는 등 실물 경제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채권 금리 상승이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채권 금리가 오르고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 증시에서 채권으로 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